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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립 Mar 01. 2020

[술터디 여섯째날] 드라이 마티니: 남매란 무엇인가


[술터디 여섯째날] 드라이 마티니: 남매란 무엇인가     


제가 칵테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맛이 섞여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는 과정에서 마시게 될 사람만을 오롯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개별 존재를 존중하되 포용까지 하는 칵테일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술터디 여섯째 날 시작합니다.       



# 드라이 마티니     


드라이 마티니



드라이 마티니 레시피

   

믹싱 글라스에 드라이진 2oz와 드라이 베르무스 ⅓oz를 넣고 바 스푼으로 벽면을 따라 잘 저어줍니다. 믹싱글라스에 스트레이너를 꽂아 칵테일 글라스에 따르고, 올리브로 장식하면 끝. 만드는 것도 깔끔하고, 맛도 깔끔한 드라이 마티니입니다. 이 레시피는 조주기능사에만 해당되는 레시피입니다. 스위트에서 초드라이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가니쉬도 레몬트위스트 혹은 레몬 제스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1979년에 출판된 ‘The Perfect Martini Book'에는 268가지의 마티니 레시피가 소개돼있습니다. 조주기능사 칵테일 레시피에는 shaking 기법이 많지만 드라이 마티니는 몇안되는 stirring 기법을 사용하는 칵테일입니다.          



# 비교당하는 남매란 무엇인가     


저는 뭐든지 성실히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항상 목표치가 높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도 항상 목표는 전교1등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받아 적었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통째로 다 외워서 시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저녁에 집에서 공부하다 너무 졸릴 땐 10분 알람을 맞추고 쪽잠을 잤는데, 그마저도 못 들을까봐 동생에게 꼭 깨우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교1등을 했던 횟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고등학교․대학교를 나왔어도 저는 항상 제가 목표치를 한 번도 이루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겐 아니었나 봅니다. 시험기간에 깨워달라는 누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자신이 먼저 잠들었던 게 너무 미안했다고 아직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시험을 망쳤다고 울다가 다음날 멀쩡하게 또 공부하는 모습을 존경(?)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 말 하나, 행동 하나는 동생에게 모방의 대상이었습니다. 동생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성향에 맞지도 않는 연극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유일한 이유는 제가 연극 동아리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칵테일 맛을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렇게나 “드라이 마티니는 달다”며 추천했는데, 동생은 정말 달다고 믿고 마시기도 했습니다.     


이 ‘모방’은 단순히 존경(?)과 좋아함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친구와 ‘딥톡(deep talk)'을 했던 이야기를 언뜻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너랑 누나의 성향은 완전 반대야. 그걸 인정해야 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마 동생은 저와 스스로를 많이 비교하며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와 제 동생은 비교를 많이 당했거든요. 주변 사람들은 동생을 보며 “누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며?”라고 했고, 그 와중에 제게는 “동생은 잘 생겼던데 (침묵) 너는 공부를 잘한다지?”라며 외모와 학업을 가지고 저울질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외모 콤플렉스가 심해졌는데 동생이라고 안 그랬을까요.      


그래서 동생은 일단 제가 하는 것을 따라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대학교까지 이어졌던 것이죠. 저는 몰랐던 이 사실을 부모님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밤새 흥청망청 술을 마시거나, 진로든 전공이든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려고 할 때 (부모님이 간섭이 조금 심하신 편입니다) 항상 “○○이(동생 이름) 하는 거 봐라. 너 따라하는 거잖아. 네가 잘해.”라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처음엔 “○○이는 나랑 상관없이 잘 사는데 왜 저런 말씀을 하시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저를 나름의 ‘롤모델(?)’로 삼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 스스로를 믿고 더 망나니가 되자     

길을 잃었다

     

저는 더 흥청망청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들도 더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제가 먼저 부딪혀 행동의 폭이 넓어질수록, 동생도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꼭 밤새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오지로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몇 년씩 시험을 준비하고, 사회에 내 목소리를 좀 더 낼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동생이 따라할 수 있는 폭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결심은 그동안 저와 비교 당하며 ‘좁은 선택’만을 했었어야 됐을 동생에 대한 미안함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나는 안 그러는 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말을 듣지 않고, “누나도 이것저것 하는데 너라고 못하겠니”라는 말을 더 들을 수 있게, 제가 더 돌아도 보고, 더 망나니짓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무언가 선택을 한다면 좀 더 ‘단단한 나’가 선택할 수 있도록 강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스스로 다짐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못났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제가 동생에게 롤모델(?)이 됐듯 누군가에게는 귀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믿기진 않지만, 엄마의 말에 따르면, 제가 5살 때 말을 듣지 않는 동생에게 “너 계속 그러면 동화책 안 읽어 줄 거야”라는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자 동생이 울면서 “누나, 동화책 읽어줘”라고 했다고 합니다. 동화책이 어떻게 협박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왜 부모님에게 가지 않고 저에게 와서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동생이 저를 따라하려고 했다는 것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망나니짓은 제가 다 할테니, 동생이 “누나 따라한다”는 핑계를 대서라도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더 이상 스스로가 못났다고 괴롭히면서 누군가와 비교하려 들지 말아야겠습니다. 제가 동생의 선택지를 넓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듯, 누군가도 저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곧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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