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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Mar 06. 2020

코로나19가 취준생에게 미치는 영향

무직자의 단상

지난 1월 20일 한국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한국 사회는 감염병 공포를 앓고 있다. 안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될수록 사람들은 변화를 주저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기업은 재택근무나 휴가를 권고하고 있고, 학교는 개학을 연기했다. 사람들은 각종 모임을 취소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 중이다. 감염병은 일상을 파괴한다.  


취업준비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재택근무를 하게 된 회사원이나 개강이 미뤄진 대학생처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아닐지라도 백수인 나의 일상 또한 신종 감염병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도서관이 몽땅 문을 닫았다


구립도서관들이 몽땅 휴관해버렸다. 언제 다시 열지도 모른다. 홈페이지에 명시된 기한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다. 그나마 잠시 문을 열었던 교육청 평생학습관도 재난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며 다시 휴관했다. 역시 기한은 상황 종료 시까지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것도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도서관이 문을 닫음으로 인해 취준생 입장에선 공부할 공간과 동시에 책을 빌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집에서 공부하는 날이 많아졌다. 도저히 집에서 집중이 안될 때만 카페로 간다. 거리에도 지하철에도 유동인구가 줄어든 게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카페만은 예외인 것 같다. 공부하기에 최적인 스타벅스(노랫소리가 가장 덜 거슬린다)에는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온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그래, 사회가 멈췄어도 구직은 계속돼야 하니까.




만약 내 동선이 공개된다면…


확진자 동선 공개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이해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코로나19에 전염돼 확진 판정을 받게 된다면? 내 이동경로와 목적지가 시간 단위로 쪼개져 전 국민에게 공개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최근 지인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만약 제 동선이 공개되면 카페랑 집 밖에 없어요...

저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럼 신문에는 <OO번 확진자 동선 ‘카페-집-카페-집’으로 밝혀져…>라고 나오고, 댓글에는 ‘빼박 백수네’ ‘불쌍한 취준생’ ‘카페밖에 갈 데가 없냐’라고 달리겠죠

역학조사는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겠어요, 동선이 제한돼서


이런 웃지 못할 내용이었다.




계속되는 모임 취소... 사람이 만나고 싶다!


최근 친구들과의 약속부터 북토크까지 모든 모임이 취소됐다. 독서 모임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나는 내향적인 성격인 데다 원래 집순이다. 사람 많은 데 가는 걸 피곤해하고 친목모임을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사적 모임, 공적 모임이 전부 취소되며 만남 자체가 그리워졌다. 지난 한 달간 새롭게 만난 사람이라고는 면접관이 전부다. 


사람들과 떠들고 싶다! 서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온기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동료라 믿으며 의지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우리 만날까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고립된 나를 구해달라는, 일종의 SOS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육아전쟁


최근 우리 집에 조카 두 명이 와 있다.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고 유치원이 휴원한 탓이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큰언니의 자녀 두 명은 서울에 살고 있는 엄마에게로 맡겨졌다. 덕분에 엄마는 원래 돌보고 있던 둘째 언니의 아들 1명에, 큰언니의 아들딸 2명까지 총 3명을 떠맡게 되었다. 60대 노인이 아이 3명을 돌보게 된 데에 큰언니가 의도한 바도 잘못한 바도 없지만 어쨌건 옆에서 지쳐 보이는 엄마를 보며 언니가 쬐끔 미워졌다. 


엄마의 돌봄 노동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나도 조카들 육아에 동참했다. 내가 출근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는 사람’이기 때문에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 


조카들과 하루 종일 노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한 일이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만 머물러야 했기에 그 에너지들을 온전히 받아내느라 더더욱 힘에 부쳤다. 예컨대 초등학생 남자 어린이는 피구를 하자고 하는데, 이제 단어를 말하기 시작한 24개월 아기는 공룡 사진을 보며 이름을 빨리 말해달라고 보채는 식이다. 엄마를 옆에서 보조하는 정도에 불과한데도 조카들과 놀고(?) 나면 금세 녹초가 됐다.




모쪼록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돼서 조카들은 학교와 유치원으로 돌아가고, 개개인의 사적·공적 모임들이 복구되고, 도서관이 열어 취준생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의 선택지가 넓어지기를. 모두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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