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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Feb 15. 2023

스마트폰 중독, 자가 치유 가능합니까

<나를 위한 노래>, 이석원

요즘 스마트폰 덜 쓰기 운동을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와의 싸움. 스크린 타임을 줄이려는 나와 인스타그램 하고 싶은 내가 전투를 벌이는데, 와 이건 뭐 총알만 안 날아다녔지 얼마나 치열하고 급박한지 장난 아니다. 

이 짓을 하게 된 것은 일요일 오전이면 울리는 알림 때문이다. 아마도 과거의 내가 설정해뒀을 텐데 스마트폰 사용량을 분석해서 일주일 치 평균을 내어 알려준다. 봐랏, 네가 핸드폰 붙잡고 산 시간을! 나의 스마트한 스마트폰은 스마트한 통계를 내민다. 쨍한 하늘색의 막대그래프는 일월화수목금토 하루도 빠짐없이 5시간을 가뿐히 넘기고 있었다. 딱히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거나 공부를 하는 건 아니고 누구와 연락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야말로 킬링타임의 목적으로만 5시간이나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마프폰 중독은 하루 몇시간 정도인가요? 문득 두려워져서 '스마트폰 중독 몇 시간'을 검색해보니 마침 비슷한 질문이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엔 정중하면서도 간단한 답변이 달렸다.

"그런 생각이 드실 정도로 쓰시는 거면 많이 쓰시는 겁니다."

고추냉이같이 알싸한 답변이 마음속에 찜찜함으로 남아 사용량을 줄여보기로 했다. 오전 오후에 커피를 한 잔씩 마시지 않으면 가벼운 두통이 생기는 것을 보고 하루 한 잔으로 줄인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스마트폰 의존성을 좀 줄여볼 요량이었다. 


가장 많이 이용한 앱은 물론 SNS. 

아니 SNS로 수익이라도 남기던가, 말 그대로 뭔가 '교류'라도 하던가. 난 완전히 남들 뭐하고 뭐 먹고 사나 구경을 하고 하트를 누르고, 웃기거나 귀여운 콘텐츠를 둘러봤다. 재미는 있었지만 딱히 내게 득이 될만한 건 별로 없었다. 심지어 사고 싶은 것만 자꾸 많아졌다. 인스타그램 광고에 현혹되어 베개나 미용 기기 등의 잡화를 사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하여 목 통증을 잡아준다는 원통형의 베개는 안고 자는 인형이 되었으며 미용 기기는 작동이 잘 안되어 비웃을 남편 몰래 저 구석에 숨겨 놓았다. 때로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소식을 얻거나 취향이 맞는 사용자의 피드를 둘러보며 정보를 얻기도 했지만 그건 사용량에 비해 반의반도 안 될 이익이었다. 


출처 : 픽사베이


SNS 외에 또 뭘 많이 하는고 하니, 쇼핑이었다. 꼭 뭘 결제하지 않더라도 나는 또(!) 많이 봤다.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장바구니에 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건 나 자신에게 카톡을 보내 링크를 저장해두기도 했다.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것은 바로 '가격 비교'인데 각 사이트의 할인율과 배송비 유무까지 따지다 보면 좀 지쳐서 나중에 사자며 결제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왜 그렇게 비교 분석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더니 쇼핑 자아는 네 지갑에게 물어보라고 시니컬하게 질문을 토스했다. 

꼭 쇼핑앱을 작정하고 보지 않아도 선수들은 기가 막히게 치고 들어왔다. 뭔가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에도 까똑 까똑을 외치면서 자꾸만 휴대폰 잠금을 열게 만들었다. 새해 첫 세일! 밸런타인데이 기프트 쿠폰! F/W 시즌 오프 이벤트!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궁금하잖아. 뭔데 뭔데. 얼마나 싸게 줄 건데. 막상 들여다보면 별것 없는데도 그렇게 낚이고 또 낚였다. 할인을 받으려고 맺었던 카톡 친구에게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음을 깨달은 나는 혼자 분개하여 다 알림을 막고 차단했다. 피차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으니 우리 그만 헤어져!

살게 있어서 보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뭐 살게 없을까 하고 보고 있었다. 휴대폰 사용 시간을 줄이기로 다짐하고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세부적인 다짐이 필요했다. 쇼핑 사이트는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열고 아무 때나 들여다보지 말기로 했다. 


인스타그램과 커뮤니티, 쇼핑 앱은 하루 최대 30분 사용할 수 있도록 앱 시간제한을 걸어두었다. 30분이 거의 다 차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따위의 경고가 뜨고, 30분이 지나면 잠긴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을 다 써서 비활성화된 앱 아이콘을 누르면 시간이 제한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제한 무시]라는 옵션이 있고, 그것을 누르면 [1분 더], [15분 후에 다시 알리기], [오늘 하루 제한 무시]를 택할 수 있다. 이럴 거면 시간제한을 왜 했어? 나는 또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네가 아침에 맨날 하는, 5분만 더 잘게~ 같은 거야. 부담 갖지 마.'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치밀한 놈... 과연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전쟁이다. 




사람이 살면서 바라는 건 참 많은데 그게 다 충족되진 않거든요. 그럼 그때마다 가슴에 생긴 구멍을 어떻게든 메워야 하는데 결국엔 돈이라는 거죠. 하다못해 문구점에 가서 예쁜 볼펜 한 자루라도 사서 손에 쥐어야 그 구멍이 조금이나마 메워지니까. 아니면 맛있는 거라도 먹든가. 저도 아직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했으면 좋겠고, 나도 좋아하는 일 한번 하면서 살아보길 바랐지만 그게 잘 안 되니까 아무리 카드를 할부로 긁어도 마음속 허기는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동그라미는 채우는 게 아니라 그저 안고 살면 되는건데. 동그라미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는 건데. 그땐 그걸 잘 몰랐죠.  _ <나를 위한 노래>, 이석원


이 글을 읽다가 생각했다. 나는 총알이 없어서 돈으론 못 채우지만, 무한 와이파이로 그 구멍 냅다 막고 있는 건 아닌가. 사는 게 딱히 재미있지 않아서 자꾸만 뭔가를 들여다보는 걸까. 재미있는 거 뭐 없나 하는 마음으로...? 

'진짜 내 삶은 SNS 밖에 있다.' 누구 가르치려는 이야기는 잘 안 듣는 편이지만 이 말만큼은 소파에 반쯤 누워 시시덕거리는 나를 서늘하게 한다. 동그라미 막 채우려 하지 말고 바람도 쐬어 주고 잘 데리고 다니면서 살아봐야겠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종이, 터치하는 손가락 말고 펜을 꼭 쥔 손가락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의 감각이 새삼 좋다. 


누가 보면 되게 열심히 중독 치료 작업 중인 것 같지만 사실 시작한 지 한 열흘 되었다. 지난주는 지지난 주보다 25% 정도 사용량을 줄였고 이번 주는 조금 더 줄여볼 요량이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스크린타임 기능을 자꾸만 열어본다. 나 몇 분 더 볼 수 있지? 세 시간까지 아직 10분 남았네. 

나 혹시 스크린타임에 중독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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