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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Oct 29. 2024

익숙한 돌부리를 만났다

또 걸려 넘어지더라도

음악으로 치자면 보사노바 같은 시간이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8월의 첫 주말, 아침부터 부지런히 바다로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파라솔을 펴고 돗자리에 눕거나 뜨거운 해를 피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앙증맞은 비키니를 입은 아기는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이른 낮잠에 들었고, 오른쪽 파라솔 가족의 아저씨는 튜브를 등에 대고 비스듬히 누워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바다로 뛰어들려던 참이었다. 


바캉스의 계절. 하늘과 바다색은 청량하고 보사노바 같은 시간은 계속되었다. 문제의 남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 부모가 우리 파라솔 2미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는 보사노바에서 데스 메탈로 바뀌기 시작했다. 짐을 내려놓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이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큰 소리로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 가족을 쳐다봤다. 아내가 자기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고 같은 말을 계속하는지 단번에 모두가 상황을 파악했다. 본인은 차를 빼야 해서 차 키와 지갑만 들고나갔는데, 왜 내 수영복을 챙기지 않았느냐. 도대체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여행까지 와서 이게 뭐냐. (아이를 보고) 네 엄마가 아빠 수영복도 안 가져왔단다. 이게 말이 되냐. 이 와중에 구명조끼는 또 가져왔냐. 당신이 챙겨야지 내가 차를 빼야 했는데 어떻게 챙기냐. 여행 왔으니까 참는다. 남자는 이 레퍼토리로 4절까지 부른 후에야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두 번만 차를 더 뺐다가는 완창 판소리급의 긴 공연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아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미안하다는 말 외엔 다른 말이 없었고 남자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너무 커서 모두가 그들을 쳐다봤다. 아주 불쾌한 표정으로. 뭐 남의 집 일이니까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 붙일 건 없지만 그 남자가 해변의 보사노바 분위기를 망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것도 별 것 아닌 일로 아내를 잡는 남편의 모양새가 영 언짢았다. 우리는 그냥 입을 삐죽하고 한 번 웃고선 우리의 바다를 즐겼다. 그냥 그런 짧은 에피소드였다. 



실컷 바다를 즐기고 돌아와 이른 저녁을 먹고 빈둥빈둥 있다가 지는 해가 예뻐 베란다 테이블에 앉았다. 행복하고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그런데 혼자 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영 이상하다. 왜 한순간에 데스메탈을 틀어재낀 해변의 그 남자가 계속 생각날까. 폭 익은 자두색의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 짧은 장면을 목격함으로 인해 내가 상처받았음을 문득 깨달았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상처를 받을 수가 있나. 그럴 수 있었다. 익숙한 장면, 내가 겪어왔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툭하면 이유 없이 화내고 싸우는 남편과 그 화를 감내하던 아내가 내 어린 시절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해변의 그 남자는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 놓았고 나는 조금 비참한 기분에 휩싸였다. 


비로소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 마음 편한 집이라는 게 정말 있다는 사실을 서른 넘어 나의 가정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크고 작은 실수를 실없는 웃음으로 쓱싹 문질러버리고 사랑을 지상 최대의 과업으로 삼는 삼각 공동체를 이루고 나서야 그 상처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저건 내가 모르는 종류인데’ 하고 순진하게 놀라고 싶지만, 너무나 뼛속 깊이 각인된 분위기라서. 한순간에 보사노바를 데스메탈로 바꿔버리는 화, 탓하기, 사람들의 시선에 주늑들기. 한때 익숙했던 것들… 나는 한순간에 그 상황에 몰입했고 지긋지긋하게 싫었고 화가 났다. 타인의 일에 감정이입 하는 게 우스꽝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상처받았고 슬펐다. 


부모를 등진 채 뙤약볕을 받으며 서 있던 아이는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부모가 얼른 물놀이를 시작하길 기다렸을까. 익숙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견뎠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청승을 떨고 있자니 어디서 옛날 카메라를 꺼내온 아이가 감성 사진을 찍겠다며 하늘을 찍고,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찍고 부산을 떤다. 무슨 소리를 해도 허허 웃는 남편과 그저 까불 줄 밖에 모르는 아이와 사는 지금이 어쩌면 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안하던 꼬마에겐 너무 과분한 날들인 것 같아 초조하다. 나의 본진은 해변가의 데스 메탈 무대인데, 잠시 보사노바의 꿈을 꾸는 건 아닐까 하면서. 


익숙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다. ‘난 언제나 여기 있어.’ 하는 돌부리에. 무슨 말하느냐고, 당신 나 아느냐고 모르쇠를 하고 싶지만 조금 슬퍼한 후 다시 모래를 털고 일어선다. 다들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서며 나이 먹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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