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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Jul 27. 2020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초연함이 아닐까

“위기 대처 능력이 증가하였습니다.”

작가 『김랄라』

여행하다
유연하게 살아가는 능력을 기르는 행위.


열여섯 랄라는 소설 <연금술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생각했다.

성인이 되면 가장 먼저 여행을 떠나야지. 장소는 상관없어.  안의 보물을 찾아 떠나겠어.’

그날 랄라에게 학교 창문을 통해 보는 세상은 유난히 작게 느껴졌다.


스무 살이 된 랄라가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부산이었다. 집에서 무려 400km나 떨어진 항구 도시.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여름의 해변. 매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그곳.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는 세 친구와 동행하기로 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창 밖에 못보던 풍경이 펼쳐질수록 랄라의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랄라의 전신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두근거리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랄라는 이 묘한 감정이 산티아고가 처음 여행길에 올랐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엉켜 랄라의 턱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부산역에 도착하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7월의 부산은 랄라의 생각보다 훨씬 덥고 습했다. 콧잔등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랄라는 급하게 스마트폰 메모장을 켰다.


DAY1 숙소 가서  풀기 > OO 국밥 먹기 > 깡통시장 구경


상호명까지 세세하게 적어둔 여행 일정표. 비가 오거나 가게가 닫힐 경우를 대비해 대안까지 마련해둔 섬세함. 그곳에 2박 3일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랄라와 친구들은 일정표에 적힌 대로 숙소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서울과 같은 모양, 같은 색의 택시였다. 랄라는 택시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간판이 덕지덕지 붙은 상가 건물, 길쭉길쭉한 아파트, 도로 위를 채워 달리는 자동차들. 랄라의 코끝을 자극했던 비릿한 바다 냄새와 달리 택시 창문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은 서울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거나 같았다. 랄라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랄라는 설렘까지 조금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나온 랄라와 친구들은 부산의 명물 소고기 국밥을 먹으러 시장으로 행했다. 명물답게 골목 하나에 전부 국밥집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1박 2일 이승기가 먹은 국밥”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가게를 발견하고 곧장 들어갔다. 순댓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랄라지만 그날 만큼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문한 순댓국이 나오고 랄라는 기대감에 찬 얼굴로 국물을 떠먹었다. 서울의 순댓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맛이 없더라도 먹어본 적 없는 새로운 맛이었으면 좋았을걸이라고 랄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밤이 되자 부산 해변엔 네온사인과 가게의 조명이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낮보다 밤이 화려한 부산의 해변인가!” 바다를 가장 기대했던 랄라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거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걸 싫어하는 친구1이 말했다.


바다는커녕 사람밖에  보인다.”

친구2 역시 사람이 많은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 … .”

친구3이 말해야할 타이밍에 정적이 흘렀다.


“OO(친구3) 어디 갔지?!”

랄라와 친구1, 2는 그제야 친구3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휴대전화를 붙들고 30분 넘게 해변을 돌아다닌 끝에 겨우 친구3을 찾은 랄라와 나머지 친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랄라는 내일 할 일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과 마지막 날도 랄라와 일행은 계획해둔 일정표 대로 움직였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과 계속해서 마주쳤다. 그때마다 랄라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행 마지막 날, 용산행 기차가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랄라와 친구들은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아 랄라는 이번 여행을 되짚어보았다. 무엇을 얻었는가. 내 안에 보물을 발견했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은 개뿔. 랄라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산티아고와는 달리 랄라는 자기 안에 어떠한 것도 발견할 순 없었으니까. 그저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했다. 그렇게 랄라의 스무 살 첫 여행이 마무리됐다.


다시 2020 1월, 랄라는 처음으로 혼자 제주도 여행길에 오른다. 부산 여행 이후 몇 번의 여행을 더 했지만 자신 안의 보물을 찾아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랄라 혼자 떠나는 여행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다. 공항버스 시간이 갑자기 바뀌어 비행기를 놓칠 뻔한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갑자기 나가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데만 1시간을 소요하고, 여행 도중에 퇴사한 전 회사로부터 불편한 전화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부산 여행 때 랄라와는 조금 다르다.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지 않는다. 빠르게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우여곡절 끝에 랄라는 처음 목표했던 한라산 등반에 성공한다. 한 겨울이었지만 랄라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눈 덮인 백록담 앞에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받은 김밥을 먹는다. 햄, 오이, 계란, 당근이 들어간 기본적인 조합이지만 앉은자리에서 5분 만에 김밥을 먹어치운다. 일어나 바지를 털고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하는데,


이런! 아이젠 고무줄이 끊어져 버렸다.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랄라는 가지고 있던 머리 고무줄을 이용해 궁여지책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예전이라면 당황해하며 어찌할 줄 몰라했을 게 분명하지만 랄라는 몇 번의 여행을 통해 위기 대처 능력을 길렀다. 아이젠이 끊어져도 꽤 의젓하게 대처하기까지 그가 했던 많은 여행들이 랄라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랄라는 고무줄로 대충 고정시킨 아이젠을 신고 한라산을 내려간다.


눈 덮인 한라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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