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여행러
작가 『김미아』
여행에서 삶의 진리를 깨닫고 다녀오고 나면 인생이 변하는 경험을 한 때는 해보고 싶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무작정 버스에 오른 적도 있다. 진짜로 무작정 버스에 올라서 부모님이 난리가 났었다. 부모님 몰래 속초로 친구랑 떠나버렸고, 밤이 되어서야 "저 속초예요"라고 말했다. 당연히 뒤집어졌다. 그게 즐거웠다. 부모님 몰래 떠나고, 친구랑 자유를 탐닉하고 없는 돈 쪼개서 궁상맞게 밥을 먹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 바다에 가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전화가 마구 울리는데 그걸 무시하고 떠나는 게 짜릿했다.
"나 오늘 떠나요, 속-초로! 핸드폰 꺼놔요, 모두 날 찾지 말아 줘"
그렇게 몇 번 밤에 몰래 나가서 여행을 했다. 부모님에겐 영재 학교 캠프를 간다고 해놓고 중간에 빠져나와서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망나니 딸이었다. 그래도 허락받지 못한 자유가 쾌락적인 걸 그때 알았다. 규율은 깨는 게 즐겁구나! 여행은 몰래 가는 게 재밌구나!
이젠 내가 여행을 간다고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나 오늘 떠나요! 를 외쳐도 심드렁하게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히려 여행을 가라고 부추기는 시대가 와버렸다. 여행에서 참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삶을 바꾸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며 젊었을 때 여행을 가라고, 가라고 그렇게 등 떠 민다. 그러니까 더 집에 있고 싶어 졌다.
한때는 남몰래 떠나는 여행에 죽고 못살았는데, 이젠 "여행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좋아하기는 하는데, 잘 떠나지는 않아요"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여행을 강요하는 사회상에 대해 비판하거나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일상에서 관점을 바꾸면 여행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는다. 가끔은 그냥 돈 아깝고 귀찮아서 안 간다고 대답할 때도 있다. 그 돈이면 아이패드를 살 수도 있고,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월세 석 달치이며 생활비가 얼마인가. 여행의 환상에 대해 비판하다 보면 때때로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시선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젠 가기 싫어졌는 데 어떡하나.
사실 '여행하다'라는 글을 쓰기 전까지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평소처럼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을까? 아니면 내 망나니 같았던 썰을 풀까?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다. 어차피 전자는 많으니까. 여행 귀찮아할 권리를 외치고 싶었다.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긴 한다. 다만 귀찮을 뿐. 아무도 말리지 않으니 자유가 짜릿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렸을 땐 규율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여행에서 느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는 지금, 여행은 방종과 같다. 그래서 나는 떠나지 않는다. 떠나지 않을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