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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Jul 06. 2020

[미아의 애장품] 없었어요, 그런 게.

물건에 애정을 주는 일

작가 『김미아』


사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 어떤 브랜드를 좋아한다에 의해 어떤 인간으로 구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취향이 거세된 존재도 있다.


면접을 볼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떤 브랜드를 좋아합니까?"였다. 브랜드에 대한 나의 깊이 있는 이해와 선구안, 그리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당황스러웠다. 취준생에게, 그것도 모든 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취준생에게 취향과 브랜드란 굉장히 먼 나라 존재니까.


취향이 거세된 존재들이 있다. 이제 브랜드 과잉 시대라고 하지만, 눈 앞에 놓인 건 다이소 하나뿐인 사람들도 있다. 다이소도 놓여 있지 않은 존재들이 수두룩하다. 굳이 따지자면 심플한 취향인데, 한 번도 시크 앤 모던 스타일로 사 본 적이 없다. 구태여 못생긴 플라스틱 장식들을 붙인 못생긴 물품들만 다이소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면접관에게 이렇게 말하자 '위트 있는 대답'처럼 넘어갔다. 상상도 못 하는 거겠지. 그들에게 취향의 시대 속에서 취향이 말살된 존재는 존재 자체가 말살된 거나 마찬가지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그래도, 상상이라도 해봐요"라고 말하면 뭐가 달라질까. 그래서 나는 아득아득 브랜드에 대해 공부한다. 내가 취향 없는 존재란 걸 들키지 않도록, 취업 시장, 사회에서 말살되지 않도록 나를 꾸며낸다.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고, 인권 운동에 지지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도록 러쉬 제품을 사는 흉내를 낸다. 무슨 브랜드를 좋아하냐고 할 때 '러쉬요'라고 답한 적도 있었다. 좋아하는 브랜드다. 그 브랜드의 가치와 행보, 제품의 질 모두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산 적이 없을 뿐. 욕조 있는 집이 아니어서 배쓰밤은 의미가 없었고, 향수나 팩 제품은 모두 내겐 사치품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러쉬 제품을 한 번도 산 적 없는 러쉬 지지자다. 러쉬 입장에선 요만큼도 신경 쓰지 않을 존재다.


그래서 물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무언가를 살 때 특별히 애착을 두고 사는 법이 없다. 두고두고 쓸 물건도, 특별히 취향을 담은 물건도 없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는 물건은 있다. 바로, 편지 꾸러미다.

꾸러미라고 해도 어쩌다 생긴 비닐 백이다. 그럼에도 이사할 땐 꼭 이 꾸러미 통째로 들고 다닌다. 한 번도 열어보지 않는 해도 있다. 그래도 가져간다. 대학교 때부터 모은 편지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공간이다. 나에게 편지를 줬던 이들의 마음과 시간을 꼭꼭 눌러 담은 곳이다.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웠던 이들에 대한 기억이자, 이젠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의 집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꾸러미를 열고픈 날은 분명 내가 힘든 날이다. 도저히 과거로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버거운 날, 편지를 하나하나 꺼내 본다. 카톡과 다르게 편지만큼은 나를 사랑하는 말로 가득 차 있으니까. 이젠 사라진 사랑일지라 해도 나는 그때의 나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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