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요즘 날에 대한 기록
“그래서 요즘은 어때?
몸은 좀 나아졌어? 괜찮아?”
여전히 회사 메신저며, 일상의 카톡이며, 지인들로부터 들어오는 연락 가운데에 상당수는 이러한 질문들로 인사가 시작된다. 은행에서도 나름 이래저래 소문이 났는지 이름만 듣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메신저로 뭔가 연락을 해야 할 때 ‘고생 많으셨네요! 앞으로는 더 건강하실 거예요!’ 이런 문장으로 첫인사를 시작한다.
그때마다 나는 새삼 놀란다. 맞다, 나 코로나 확진자였지. 그간의 일들이 한 일 년 전의 일이나 된 것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사실 은행으로 지난달 6일에 복귀했으니, 오늘이 진짜 일상으로 복귀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또다시 마음이 겸허해지는 일요일 저녁의 보내기 싫은 밤.
며칠 전에는 근무 중에 핸드폰에 낯익은 번호가 떴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으나 느낌으로 알았다. ‘어? 이 번호 너무 익숙한데? 음, 이거는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내 앞에 상담 중이던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OOO 선생님 맞으시죠?
여기 OOO구 보건소인데요~”
어쩐지, 코로나 확진자가 되고 수도 없이 통화했던 번호라서 내 머리와 내 가슴이 그냥 느낌으로 알고 있는 일반 전화번호였다. “아, 네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떤 일 때문에......”라고 나는 말끝을 흐린다. 밝은 목소리로 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네~~ 건강은 좀 어떠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 구에서 코로나 확진자이셨던 분들께 격려차원에서 자그맣게 선물을 보내고 있는데, 받기를 거부하는 분들도 계셔서 확인차 연락드렸어요.”
“선물이 대단한 건 아니고요, 손소독제 및 마스크 등으로 힘내시라고 보내는 건데.... 혹시 받으시겠어요?”라고 선생님이 조심스레 여쭤보셨다. 지역구 차원에서도 확진자들에 대해 여러모로 신경을 참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선물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더 이상 코로나 확진에 대한 기억은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 아니겠는가.
“아~네~ 선생님! 저는 받아도 좋은데요, 다만 그 사이에 제가 이사를 해서 현재는 다른 구에 거주 중이라.... 직접 오셔서 현관문 앞에 두고 가신다고 하셨는데 저희 집까지 너무 힘드시지 않을까요? 받은 걸로 할게요! 저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나였다. 알겠다고, 그러면 그냥 거절하신 걸로 위에는 말하겠다고 하셔서 나 또한 알겠다며 전화를 종료했다. 최근에 급격하게 코로나 확진자들이 대거 발생하면서 매일 같이 전쟁통일 텐데, 그 와중에 기존 확진자들까지 챙기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감사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여보는 진짜 다행인 거야.
요즘 같은 때에 코로나 확진되었으면
병원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여보가 확진되었던 때가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던 때라고.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거지."
남편의 말처럼 사실 나는 어찌 보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코로나 확진자였지만 내가 확진을 받았던 지난 9월 28일은 코로나 확진자 증가세가 현저히 감소하던 시기였다. 현재 하루에 600명이 넘게 확진을 받는 놀라운 시기와는 다르게 그 당시는 하루 확진자가 몇십 명 대로 감소했었다. 그 때문에 상황이 좋아지는 국면에서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요즘에는 확진자가 되고 나서도 생활치료센터로 가든, 병원으로 가든, 자리가 부족해서 3일씩 대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고 즉시 이송됐었다.
물론 생활치료센터에서 격리되어 있는 14일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병원으로 전원을 가야 했고, 병원에서도 11일간의 홀로 외로운 시간을 버텨냈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내가 머물렀던 병원 음압 병동의 마지막 1인 환자가 되면서 의료진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도 넉넉히 받았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퇴원 후에는 집에서 2주간 쉬면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확진자에 대한 주홍글씨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직장으로의 복귀가 무섭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하는 직장 동료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를 환대해 줬고 플랜카드까지 장식하며 나의 복귀를 환영해 주었고 지금까지 기존 같은 합으로 최고의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다.
은행으로 복귀하고 2주쯤 지났을 때, 한 방송의 뉴스 채널 작가님께 연락이 왔었다. 코로나 확진 이후, 직장에서 눈총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 심하게는 비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취재 중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에 내 브런치의 [30. 코로나, 확진자이지만 가해자는 아닙니다.] 라는 글을 보셨고 그래서 내게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준비하고 있는 기획기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너무나 환대받으면서 은행을 잘 다니고 있었기에 인터뷰가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진짜 이래저래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임이 확실하다.
일상 복귀 후 직장을 다니며 다시 워킹맘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격리되어 있는 동안 간절히 꿈꿔왔던 일상의 달콤함을 위해 가족들과 오롯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기까지는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코로나 옥중일기>라는 브런치 북도 잠시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수많은 검색을 통해 내 브런치로의 유입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꽤나 놀랐다. 브런치에 글을 게재하면서 솔직히 구독 수나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고 나만의 글을 계속해서 쓰기를 원하지만, 요즘 들어 보이는 통계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언급될 만큼 사태가 심각한 수준이고, 급격하게 증가되는 확진자 속에서 코로나에 대한 상황이 낯설고 궁금한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된다. 서울시가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함을 발표한 오늘만 해도 '코로나 음성이란, 생활치료센터, 코로나 후각 미각 상실, 코로나 완치' 등과 같은 다양한 검색어로 내 브런치에 유입된 기록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그들보다 조금 먼저 기나긴 터널을 통과했을 뿐이지, 나 또한 코로나 확진자였고 음성 판정을 3번 받고 병원을 퇴소하기까지 험난한 과정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은 지는 이미 한 달을 훌쩍이나 넘겼지만 사실 나는 최근까지도 약을 복용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약을 끊었으니 코로나 확진이 되었던 그날 이후 무려 거의 두 달간 약을 먹었다. 나를 끝까지 괴롭히던 증상은 인후통이었다. 인후염/편도염의 통증으로 침을 삼킬 때마다 작은 단추 하나가 걸려있는 것 같은 통증들이 퇴원 이후에도 계속되면서 약 복용이 중단될 수가 없었다. '정말 이 약을 끊을 수는 있는 건가, 이 증상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는 건가...'라는 의심 속에 하루 종일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것이 서럽기까지 했다.
증상 완화를 위해 독한 약들이 몸속에 계속 투입되면서 위장은 위장대로 나름 고생을 했다. 퇴원 이후 지인들이 보내준 홍삼이나 비타민 같은 것들을 정말 열심히 챙겨 먹으면서 위장 문제로 양배추즙까지 직접 구입하여 지금까지 먹고 있으니, 코로나 그놈은 꽤나 질긴 놈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코로나 후유증의 하나인 브레인 포그나 탈모 같은 증상들이 내게는 없음에 그저 감사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증상들은 결국 내 몸이 점차 회복이 되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지난 수요일 아침, 출근해서 아침 약을 깜빡 잊고 챙겨 오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잘 버텨보자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나를 괴롭히던 증상들이 사라졌음을 인지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일상으로 복귀한 지 한 달이 된 오늘 밤은 이래저래 감사하다. 불평할 것들이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늘 감사함을 찾으려 노력했다. 누군가는 억지 감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 반문할지 모르지만, 우리 뇌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감사함이 머릿속과 마음에 내재하는 그 순간 불평과 불행은 서서히 사라진다. 25일 간 홀로 격리되어 치료를 받는 내내 우울하고 불안했지만, 결국 나는 감사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
혹여나 우연히 내 글을 보게 되는 코로나 확진자들이 있다면, '너는 경증이었으니깐 그렇지..' 그런 마음보다 저 여자도 저렇게 잘 이겨냈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마음먹어보자!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상 우울의 우물을 파지 말고 새로운 감사의 우물을 파 보기를 응원하고 싶다.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때이다. 이제 이틀 후부터 수도권 내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된다.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가 되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확진자 증가세가 지금보다 더 가속된다면, 정말 제 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치료조차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할 수가 있다. 그때 가서 후회하는 일을 만드는 것보다 미연에 방지하는 것만큼 훌륭한 조치는 없지 않을까. 나 하나쯤 괜찮겠지, 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 모두를 위해 거리두기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마음의 거리는 더더 밀착되어 지기를 기도해 보는 밤이다.
그래서 우리 아들에게 언젠가는, 엄마가 용감히 코로나를 무찔렀던 일들과 그로 인해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꼭 추억삼아 이야기 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세상이 이러한 새로운 바이러스로 혼란하고 어지럽지만 우리 마음 가운데 확실한 사랑과 감사가 있다면 어떤 장애물이라도 거뜬히 넘어낼 수 있음을 자신있게 말하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오늘도 내 마음은 감사와 함께 1cm 더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