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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좋아 Dec 10. 2021

누구나 가진 애매함에 대하여

『애매한 재능』을 읽고 씁니다.

누구나 가진 애매함에 대하여


어릴 때, 저는 세상 가장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다재다능하다고 여겼죠. 그래서 초등학교 때, 욕심을 부려 다섯 개 이상의 학원을 다녔습니다. 미술 수업을 듣고, 중국어를 배우고, 피아노를 쳤어요. 컴퓨터 학원에 다닌 덕분에 타자 빨리 치기 대회에서 1등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재능이 없구나'


중, 고등학생 때에는 학생의 재능은 그저 성적을 의미했어요. 내 안에 어떤 재능이 있는지 살펴볼 여유가 없었죠.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제가 무슨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자기소개서에 특기를 써야 할 때는 키보드 앞에서 손끝이 머뭇거립니다.



『애매한 재능』


수많은 재능 관련 도서 중 『애매한 재능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재능'이라는 앞에 '애매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처음 봤어요. 오묘한 조화에 책에 손이 먼저 향했습니다. 수미 작가님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10년은 써보고 결정하라"라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해요. 이 책은 수년 동안의 재능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대학 동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언니는 나를 '범재'라고 표현했다.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아서 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범재'라는 단어를 보고 여러 번 곱씹었어요. 범재는 '평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의미해요.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보통의 재주를 가진 사람이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는 범재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체능에 소질은 꽝이고, 마이너스의 손이라 제 손이 닿는 것은 모두 고장 나고 말죠. 30여 년을 살면서 특출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그릇이 작고 겸손해 보일지 모른다. 더 큰 그릇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더 좋은 것을 담아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가진 그릇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비로소 ‘무언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스스로에게서 거둘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박완서 작가님도 마흔이 되던 해 소설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서 제 애매한 재능도 언젠가는 빛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제가 가진 그릇을 바꾸는 게 아니라 소중히 다뤄야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여러분께 질문 하나 드려요.



"여러분의 애매한 재능은 어떤 것인가요?"






해당 글은 제가 운영하고 있는 <1101레터> 뉴스레터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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