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작은 사고가 있었다.
마트에 장 보러 간 사이에, 아이가 커터칼로 무언가를 하다가 손을 베인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고 조심성도 많은 녀석이라 살짝 베었나 싶었는데 상처를 보는 순간 아이를 껴안고 말았다. 생각보다 많이 베어서 피가 멈추지 않았는데, 나의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주말에 문을 여는 병원과 동시에 봉합을 같이 해줄 수 있는 병원이 어디일지 핸드폰을 검색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충 옷을 껴입고 택시를 불러 근처 중급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미 대기자가 많아서 2,3시간을 대기해야 하며, 인대나 신경 손상이 있을 경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에 근처 다른 병원의 응급실로 전화를 걸었다.
긴 시간을 대기하고도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을 수 있는 이 병원에서 계속 대기해야 할지,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를 걸어 병원의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이었다. 혹여나 그 병원도 같은 상황이라면 제3의 병원을 찾거나 처음의 병원에서 대기하는 게 더 나은 대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로 근처 병원을 검색하고, 응급실로 전화를 연결하니 자동응답기가 연결되었다. 병원의 소개와 병원의 직원들은 고객의 가족과도 같음을 당부하는 길고 긴 안내 멘트를 겨우겨우 참고 넘겼다. 병원의 부서를 연결하라는데 모든 부서를 다 듣고 있을 수도 없고 상담원 연결을 누르니 다시 자동응답기가 연결 되며 응급실의 다른 번호를 안내하는 기계적 멘트에 참았던 인내심이 폭발하였다. 자동 응답기에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고, 아이들 데리고 택시를 잡아 상급 병원으로 향했다.
상급 병원 응급실은 복잡하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그에 합당한 서비스는 받을 수 있겠지. 피가 계속 세어 나오는 상처를 보여주거나 바로 소독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 마음이었다.
도착한 병원 응급실에서 코로나로 인한 절차를 밟고 도착한 지 5분 만에 아이의 상처 난 손을 보여줄 수 있었다. 사고가 생긴 지, 1시간 반 만이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봉합에 들어간 시간은 병원에 방문하고도 2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지만, 나는 첫 방문 후 5분 만에 소독을 할 수 있었던 걸로 되었다. 소독을 하면서 심각한 상황인지, 아닌지 전문가의 멘트를 듣고 비상처치가 되었다면 그 후의 시간은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었다.
나는 단지 그걸 원했다. 아이의 상처를 진단하여 기다릴 수 있는 일인지, 위험한 상처라면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게 아니라 다른 병원을 찾아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가의 안내였다.
병원이라면, 적어도 응급실이라면 멍청한 자동응답기의 뻔하고 뻔한 안내멘트로 시간을 허비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응급실이라면! 응급실을 찾은 사람들의 긴박함을 생각해서라도 기다리는 시간만을 앵무새처럼 되네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정성이 빠져있는 비겁한 책임 회피성 안내 멘트는 사람이 했을지라도 멍청한 자동응답기와 다를 바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모든 산업에선 효율성을 핑계로 기계로 대체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병원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급할 때 찾는 병원만큼은 기계가 대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까지는 아니어도 제때 늦지 않게 적합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사람대 사람의 대면 초치가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완성될지 모르지만, 기계가 많은 부분을 대체할 세상.. 벌써부터 걱정이다. 자동응답기의 기계적 안내멘트, 나만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