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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정 Nov 27. 2021

우리 집 양사장

양사장이라 부르고 남편이라 쓴다.




17년 전, 2004년의 끝자락에 나는 양 씨 성을 가진 제주도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을 만나고 연애를 하던 2000년 초만 하더라도 제주도는 지금처럼 친근한 곳이 아니었다.

낯설어서 신비롭고 습하고 거친, 조금은 불편했던 곳?


스물여덟 야생마 같던 남자가 제주도 방언으로 통화하는걸 우연히 들은 이후로, 서울 사대문 안에서 태어나 사대문 밖으로 나가 살아본 적이 없던 새침데기 서울 여자인 나는, 제주라는 미지의 섬과 제주성을 가진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그렇게 우린 2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육지와 제주는 달라도 너무 달랐는데, 그렇게 천차만별인 곳에서 자라난 우리는 식성부터 가치관, 생활습관, 표현방법 등 모든 것에서 정말 상극일 정도로 달랐다.

 

생일을 챙겨 받아 본 적이 없었던 남편은 어린 시절 살아왔던 대로 나의 생일도 건너뛰기 일쑤였고, 카페나 브런치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으며, 제사는 집안의 가장 큰 일이었다. 결혼 전엔 그 신비롭던 제주도 사투리도 결혼 후엔 왜 그렇게 억양이 세게 느껴지는지 싸우자는 건가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울고 불고 싸우고 화해하고.. 물론 나 혼자! 그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바위같이 무심하게 대꾸도 없었지만. 그렇게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아이를 셋이나 낳았고, 남편의 사업은 망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번. 무뚝뚝하고 거칠었지만 우직하며 사람 좋았던 남편은 이상하리만큼 사업에선 잘 풀리지 않았다. 우리의 30대는 아이 셋을 안고 폭풍의 언덕에 서서 모진 비바람을 찰싹찰싹 그대로 받아내던 형국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나는 직장을 오랫동안 다닐 수 있었는데 안정적인 현금 캐시 역할을 했고 남편이 가장으로써 가졌을 부담을 조금은 나눠졌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새침한 서울 여자는 사라지고 대꾸 없이 무뚝뚝한 남자도 절반 정도는 서울 남자로 희석되었는데, 이 부분이 나는 무척 뿌듯하고 기쁘다!!


지금은 와이프인 내가 부르면 3초 내에 대꾸를 하며, 어지간한 나의 잔소리에는 웃어넘길 줄 알게 되었고, 서운함을 토로하는 나에게 몰라서 그래. 알려줘 라며 내 마음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센 억양은 여전 하지만 어색하게 흉내 내는, 그랬니~?로 대꾸하는 노력을 보면서 17년간 다르다며 싸웠던 게 허투루는 아니었구나. 이 정도는 살아야 비슷해지는구나를 느낀다.


내가 남편을 양사장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금수저는 고사하고 은수저도 아니었기에 남편은 사업을 하면서 항상 자금난에 시달렸다. 불과 삼 년 전 아이템 개발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구하느라 마음에도 안 맞는 사람과 동업을 하게 되었고 매일을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비상금을 털었다. 그렇게 남편은 그 사람에게 받은, 투자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규모의 돈을 돌려주고 나는 남편 회사의 지분을 가져오며 [심리적]으로 남편의 상사, 즉 회장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열심히 하는데 잘 안 풀리는 남편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남들은 사업하면 돈도 잘 벌던데, 언제까지 안되기만 할 거냐. 하는 마음이었다. 열심히 안 하나? 머리가 나쁜거 아닐까? 사업 때려치워라, 물론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수없이 생각했다. 그런데 그럼 뭐하나.. 맞는 것보다 안 맞는 게 더 많고 밉고 어쩌고 해도 이번 생은 나랑 같은 편으로 태어난 것을.

같이한 세월이란 그런 것 같다. 모난 부분은 깎여 나가고 측은지심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되는 마법을 부린다.


그렇게 나는 삼 년 전부터 남편을 양사장이라 부른다.

그런데 어제, 우리 집 양사장이 상을 받아왔다. 이름하여 공로상. 뭘 공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빌 언덕 없이 혼자 고군분투하던 남편이 서울시와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노력하더니 성과를 인정받아 서울시 공기관에서 주는 공로상을 받아온 것이다. 더군다나 1등 경품까지 뽑아서 한쪽에는 공로패, 한쪽에는 64인치 이젤 티브이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말이다.


양사장 내 남편아, 이제 좀 풀리려나 보다. 지금처럼 한결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길. 이제 시작이니까. 열심히 하는 데는 장사가 없어서 어떤 형태로는 보상이 되는 것 같으니 말이야.

무뚝뚝한 남편이랑 근 20년을 살다 보니, 나도 소녀 같은 마음이 사라져 당신이 공로패를 건네주었을 때 축하해!로 시크하게 끝냈지만... 정말 기뻤고 자랑스러웠어!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며 한평생 살아보자고. 사업 잘 되면, 나 차 한 대만 뽑아주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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