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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정 Nov 26. 2021

매거진B 10주년 아카이브

전시 리뷰



며칠째 상공을 뒤덮던 미세먼지가 걷힌, 맑고 화창한 초겨울에 멋진 전시를 만났다.


매거진B를 접하건 꽤 여러 해 전이다.

정기구독을 할 만큼 팬심이 두껍지 않던 때였다.


내가 기억하는 매거진B는 편집 디자인이 무척 아름다웠던 종이 잡지였다.

타 패션지에 비해 텍스트가 많았고 내용이 자세했던 걸로 기억한다.

독특했던 점은, 월간지였음에도 한 권에 한 가지의 주제만을 다루었던 점이다.

매거진B의 B는 BRAND를 의미했음을 볼 때, 한 권에 한 개의 브랜드만을 다루었으니 다양하지만 깊이가 얕고 스토리가 짧은 타 잡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던 잡지였다.


근래 SNS를 살펴보던 중 매거진B의 10주년 아카이브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벌써 10주년이라고? 친한 친구의 소식이라도 접한 듯 전시를 예약했고 올해 들어 가장 추웠지만 나의 에너지가 충만했던 어제, 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전시는 회현역의 피크닉이라는 카페, 바, 레스토랑, 숍등 즐길 거리가 잔뜩 있는 장소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장소가 또 예술인지라 전시 전 주변을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목적한 곳의 사사로운 것을 살펴보는 즐거움. 나는 이 기쁨이 좋다.

이렇게 좋은 공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하 숍부터 외부 필로티, 옥상 테라스까지 빈티지하기 이를 데 없으며 군대군대 던져 놓듯 한 조경은 또 어찌나 멋있는지 정신을 홀딱 빼앗겼다. 무심한 듯했지만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건물은 70년의 역사를 자랑했고,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건물은 오래되면 새로 짓는 거 아니었던가?

업싸이클이나 리싸이클은 외국에서나 통용되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빈티지하기 이를 데 없는 건물은 그 존재만으로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적당할 만큼만 편리했고, 그 정도로만 치밀하게 계산해서 리뉴얼한 느낌이었다.

누가 디렉팅 했는지 선수다 싶은 마음이고 한동안 업으로 삼았던 분야였기에 감동적이었다.


1층은 화려한 샹들리에로 장식된 'kafe pilknic 카페 피크닉' 이 있다.

보통은 'cafe picnic  카페 피크닉'이라고 할 법하다.

철자를 변형한 그들만의 의도가 있었을 거라 상상해본다.

공간의 구석구석에서 '난 달라'를 외치던 힙한 공간.

오래간만에 즐거웠고 전시만 좋으면 오늘의 일정은 완벽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전시장의 첫 번째 스테이지는 좁고 높은 한정된 공간에 10년 동안 발행된 매거진이 액자처럼 걸려 있었다.

각 권별로 다채롭고 화려한 컬러와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바닥에서 천정까지 줄지어 말이다.


좁고 높은 공간의 끝자락엔 하늘을 품은 전창이 뚫려있다.

반투명 화이트의 초겨울 필터를 껴놓아 반쯤은 희끗해진 청파랑 하늘과 매거진의 규칙적인 나열에서

시간의 반복과 좁은 공간이 팽창함을 느꼈다.



다음 전시로 향하는 발걸음.

공간에 전시된 오브제가 나에게 질문한다.

상업적인 브랜드가 진실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요즘 본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상품의 본질은 물론이고, 브랜드의 본질과 고객, 즉 인간의 본질까지도 생각한다.


브랜드를 만들고 전개하는 것은 비즈니스다.

비즈니스의 결론은 수익창출이고 절대적으로 브랜드는 순수미술처럼 맑을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상업적인 브랜드들이 진실을 언급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진실이란 무엇일까.

고객은 언제, 상업적인 브랜드에서 진심을 느끼는가에 대한 질문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카이브의 마지막 카테고리 CEO8인의 인터뷰 중 에이스 호텔의 CEO/BRAND WILSON의 인터뷰에서

해답이 될 만한 힌트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하는 다정함' 정확히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듣기론 그랬다.


고객을 대하는 다정함과 고객만족은 결이 다르다.

고객만족이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기본 토대라면, 그 위에 다정함이란 레이어를 한 겹 씌우는 것.

그러므로 인해 기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듣고 싶은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

그 매직은 다정함에서 표출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빠져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댄서들의 간절한 마음과 공감.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과 도킹했기 때문이리라.


간절한 것. 그로 인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감동을 주는 것.

진실을 내 안에서 외부로 전달하는 또 다른 방법이며 상대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키는 방법이다.

진실이란 그렇다.


어찌 보면 브랜드란 인간과 다를 바 없어서 브랜딩이라는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처럼 매 순간 정성과 마음을 들여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때 고객은 상업적인 브랜드에서 진심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전시관 2층엔 100여 개의 브랜드가 진열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나 알법한 100여 개 브랜드의 핵심 서비스가 진열되어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직결되는 그들만의 무기 말이다.


심플했고 또 심플했다.

그렇지만 그 심플한 매개체에서 난 브랜드를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정확히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핵심 가치란 얼마나 대단한가? 그걸 가지고 있는 브랜드는 얼마나 될까.


이번 전시를 예매하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라는 무형의 가치를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타인에게 내 마음 하나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아닌 너의 마음을,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역사를,

무형의 핵심 가치를 유형의 매개체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듯싶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진열된 브랜드들을 보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좋은 방법을 찾았구나 느꼈다.

좋은 전시를 보고 있음으로 나는 시간을 보람차게 보낸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로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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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품을 만남으로, 만족할 만큼 좋은 소비를 했고, 그 사실로 가슴이 뛰었다.

나의 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브랜딩이란 이런 것일까?


전시의 마지막 카테고리 CEO8인의 인터뷰 나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10-20분가량의 인터뷰 영상을 모두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A.P.C를 듣지 못한 게 아쉽다.


서로 다른 브랜드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각자 다른 환경이었겠지만 CEO들이 생각하는 브랜드의 본질은 비슷했다. 고객을 대하는 진실성, 친밀함, 공감, 다정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노력.


20세기의 급격하게 진행된 산업화 속에서 아름다움이란 가치가  편리성, 대량 생산에 의한 획일화에 묻혀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공감한다.

요즘 트렌드로 회자되어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hip' 이란 트렌드도 낡았지만 다른 것, 고유의 차별화된 아름다움에 근거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불편하고 효율적이지 못해도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라는 ASTIER DE VILLATTE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서울, 브랜드 서울은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서울이 품고 있는 것들의 아날로그식 표현이 마음이 들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 개별의 역사와 스토리를 지닌 브랜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랜만에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더불어 나의 브랜드를 소개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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