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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Jan 24. 2020

야자나무 농장 겨울맞이

강화도에 드디어 시베리아 추위가 몰려온다. 비가 오고 난 뒤 다음날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다는 뉴스가 귀에 들어온다. 농부 일을 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 중에 하나이다. 날씨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초보 농부가 맞이하는 첫겨울인데 빵빠레를 울려야 하나?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이제 농부로서 시험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레인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뭐 하나 놓친 모종이 없을까 농장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추위 한 방으로 추위에 강한 야자나무 모종일지라도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 자리를 잡은 대표적 야자는 워싱턴과 카나리아, 뷰티아 야자이다. 워싱턴야자는 비교적 저온에도 꿋꿋이 잘 자란다. 제주 공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키 큰 나무가 워싱턴 야자이다. 한국에서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남해안에서도 야자나무와 온대림 나무가 뒤섞여서 자랄 것이다. 최대한 햇빛을 보라고 노지에 내놓은 내 몇몇 야자나무가 추웠는지 잎색이 변했다. 서서히 말라 가는 묘목도 있었다. 느긋하게 하자고 매번 외쳤지만 성격 급한 레인은  다시 본모습을 보였다.  “야자수가 춥대. 온도를 많이 올려줘야 겠어. 비닐하우스에 찬바람이 들어오는 틈새가 없는지 더 살펴봐야 해서 오늘 엄청 바쁠 거야” 지하수 모터 펌프와 배관에 전기 열선을 설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화재가 나면 어쩌나 하고 열선을 이리저리 돌렸다가 저리 돌렸다가 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열선 설치를 마쳤다. 어떤 것일지라도 잘 하려고 하면 결코 쉽지 않다. 지하수 펌프 주변으로 자투리 땅이 있는데 한참을 그 주변을 서성이면서 생각한다. 봄에 그곳을 어떻게 꾸밀지 야무지게 말한다. "분갈이 할 작업대가 필요해. 나무와 빨간 벽돌로 만드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어야 해. 기왕 지붕 만들거 스페인풍 기와를 올려야겠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니까 분갈이 작업대에 붙여서 나무 처마를 만들어야겠어. 그곳에 공구도 보관해야 하고 도자기 작업도 할 수 있으니까.."

 같은 품종의 야자나무이지만 그 씨앗마다 유전 성질이 다르기에 추위에 강한 친구도 있을 것이고 조금 추위에 약한 친구도 있을 것이다. 여기 인간 사회처럼 다양한 성격의 나무들이 겨울을 나겠다는 하나의 목표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레인은 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야 했다. 우주 선장 같은 생각을 한다. 패신저스 영화를 생각했다. 주변이 깜깜한 심우주 속을 힘차게 헤쳐나가는 우주선이 있다. 인간이 상상하기도 견디기도 힘든 긴 시간을 무사히 지나서 우주 반대편 사람이 살 수 있는 아무개나 행성으로 승객들을 실어 날라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진 우주 비행 선장. 사고라도 발생하는 순간 우주선 안의 모든 사람들은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 비닐하우스는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한 배를 탄 승객들을 잘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새벽이면 농장으로 간다. 무사히 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되면 마음이 굉장히 안심된다. 스스로에게 그동안 너무 잘 했어! 라고 큰소리 칠 수 있게 된다. 농장 하우스를 제외한 공간은 영하의 추운 공기인데 하우스 안쪽은 따뜻한 공기를 품고 있는 형국이니 비현실주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진짜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덮인 겨울 풍경이지만 화가가 흰 천에 봄 풍경을 그렸고 그 그림을 줄에 걸어서 봄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두 세상이 공존하는 거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다시 그런 그림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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