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 농부 2020. 농부는 아직 살아 있다. 그동안 잠시 바빴을 뿐이다.
작년 한 해는 정말 힘들었다. 휴경지 땅을 구입해서 농장 밑바탕을 만들다가 한 해가 다 갔으니까 말이다. 조금 농사 경험이 있는 주위 사람들은 땅 깊숙하게 자리 잡은 돌이며 그동안 당당히 터주대감 노릇한 잡초며 그걸 해치우려면 자리 잡는데 3년 이상은 걸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년 반 만에 완성했다. 작년 동일 기간을 비교해보면 노동력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다. 또 내년이면 올해의 반만큼 줄어들겠지. 하하하.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보니 벌써 한 여름이다. 야자 모종 포트를 햇빛이 좋은 곳으로 몇 개를 옮겼을 뿐인데 윗 옷이 벌써 땀에 젖는다. 온실 안 온도가 35도를 넘어선 지 오래고 벌레들도 막 내 세상이다 하고 날아다니고 잡초들도 농부의 영향력이 약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 야자수들을 땅에 심어두기도 했는데 장맛비에 성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겨울 동안 일조량 부족으로 길게 쳐져 자라던 워싱턴야자 잎들이 짧고 단단해지고 있다. 워싱턴야자는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 새 잎이 나와 잎이 펴지려고 할 즈음에 연속해서 그 다음번 새 잎이 올라온다. 이맘때쯤이면 한 달에 두 잎 정도가 새로 생기는 것 같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7월의 농장 모습이다.
6월에는 비도 잘 오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열심히 야자수를 땅에 심었다. 이마의 땀이 흘러 안경 렌즈를 가려서 시야를 답답하게 했다. 내가 원했고 좋아하는 일이지만 이 순간은 정말 고통이다. '악' 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삽으로 땅 한 군데를 파고 모종을 심고 다시 일어나서 삽으로 땅을 파고 다시 심고.. 그 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화분에서 기르면 관리도 쉽고 겨울에 다시 온실 안으로 옮길 때도 용이한데.. 화분에 심겨있는 야자수와 땅에 직접 뿌리를 내리는 야자수를 비교했을 때 왜 성장 속도가 차이가 나는 걸까? " 도대체 땅심이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뿌리가 넓게 뻗어나가서 넓은 땅의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게 되니까 빨리 자라는 건가? 영양분이라면 비좁은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 한데 웃거름을 충분히 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러면 동점이 아닌가.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열심히 책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결론은 농부는 식물 뿌리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생' 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가 없다. 땅 속 균사체 미생물과 식물 뿌리 간에 상호 협동에 주목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경험적 비교를 통해 사실적으로 잘 써보겠다.
요즘 시대에 농부는 농사만 잘 짓는다고 장땡이 아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육체적인 일에 부딪치니 홍보, 마케팅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집에 갈 때쯤이면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리를 저는 날이 많았다. 이 순간 마이크 타이슨 복싱 선수가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블라블라~~ '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래도 수익이 나야지. 잘 팔려야 한다. 그럼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원하는 것? 이 거대 추상적 표현 앞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친구한테서 팜트리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평소 식물 기르기와 거리가 먼 친구의 의견이어서 귀를 쫑긋했다. 한국에서 이미 자생을 하고 있는 워싱턴야자에 대한 의견이다. 워싱턴야자는 와일드한 느낌이라서 좋다는 사람이 반반이야! 최소 내 주변에는 다 그래. 와일드하다?
그 친구는 대구에 살고 있다. 평소 작업실을 다니면서 그 주변에 있던 판화 작업을 하는 예술가를 알게 되었는데 서울 근교 어느 미술관에서 함께 만나게 되었다. 그림을 둘러봤고 헤어지게 되었다. 친구가 골라 담은 야자수 모종을 박스에 담아 판화가의 차를 타고 다시 대구로 내려갔다. 이주일 뒤에 연락이 왔다. 그 친구 주변에는 예술계통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삼삼오오 모였을 때 그날 가져간 야자수 모종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했나 보다. 예술가의 눈에는 워싱턴야자는 잎에서 갈라져 나오는 가는 털 때문인지 야생의 느낌이란다. 실내 공간을 예쁘게 하기에는 워싱턴야자는 야생적이라서 별로라고.. 밖에서 길러야 할 것 같은 느낌. 웁쓰.. 지금까지 많이 가꾸던 워싱턴야자는 어떡하지??
집에 아기는 어느덧 100일이 넘었고 잘 자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할 뿐이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농장일이 힘들 때 잘 자라고 있는 아기를 생각하면 새 힘이 솟는다. “쿵쾅이가 있는데 세상에 겁나는 게 뭐가 있겠어” 이렇게 조금씩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 같다. 야자나무가 조금씩 성장하듯 부모의 마음도 조금씩 커지는 것 같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