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40세 아이를 꿈꾼다.
야자나무 농장 근처에 마트가 있다. 걸어서 갈만한 아주 가까운 것에 위치해있다. 마트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농장일은 엄청난 육체적인 힘으로 하는 것이기에 조금만 더워져도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땀과 흙먼지로 정신이 반쯤 혼미해졌을 때 한 번쯤 들러서 목이라도 축인다. 마트 사장이 “야자 농장 출근할 때는 멀쩡한데 어째 오후 시간이 점점 될수록 피폐해져 하하” 주말이면 그냥 쉴 것이지 사서 무슨 고생이냐고 웃는다.
설날 전후부터 작업한 돌 제거 작업이 이제 거의 끝이 보인다. 농장 경영기 시작부터 이 길고 긴 돌멩이 이야기를 멋지게 장식했었지. 농장 땅 한쪽으로 가지런히 돌담이 생겼다. 사람의 욕심이란.. 기왕 하는 거 멋진 돌담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돌담을 쌓으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내 손으로 시작해서 뭔가를 완성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의 욕망을 읽고 처음부터 끝까지 매듭을 지어본 적이 있었는지.. 꼭 뭘 해야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고 내 마음의 틀 안에 있는 건데 마흔이 되기 전에 그 틀을 버리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생애 첫걸음을 뗄 40세 아이를 꿈꾸기 시작했다. 나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진정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 보는 거다. 강한 육체적 노동이 끝나고 잠시 멍하니 쉴 때, 땀이 조금씩 식어가는 와중에 극도로 차분해지는 걸 경험하면서 잠시 마음속의 불안을 잊곤 한다. 나를 이해시키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올해 3월은 정말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3월 17일에 새 가족이 태어났다. 아들이다. 다행이다 싶었다. 나의 존재와 불안은 항상 같이 있었지만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 불안이 빠르게 옅어져 가는 것 같다. 나를 이을 누군가가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래서 앞날이 안심이 된다. 세상이 좀 더 든든해진다. 걸을 때 약간 뒤꿈치를 들면서 리듬 있게 걸었는데 걸음걸이도 무겁게 변하는 경험이란..
지나가던 농부 1님은 항상 궁금해한다. 젊은 사람이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는 농사일을 하는 모습을 신기해한다. 초짜 중에 초짜인 나를 걱정하고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저게.. 저게.. 잘 되려나?!” 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 같다. 온실 안을 보여달라고 말하지.. 은근 빙 둘러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흙을 고르거나 포크레인을 불러서 돌멩이를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하지 말고..” 하면서 오랜 농사 경험을 앞세워서 가벼운 잔소리처럼 알려준다. 이제 든든한 마음의 힘 때문인지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들린다.
살바도르 달리의 바다 그림. 온통 암울한 색이 가득한 세상 너머로 한 소녀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희망을 암시하는 걸까?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푸른 하늘빛이 지평선 위에 어렴풋이 걸쳐져 있다. 이제 야자나무를 심어야 할 시간이네.. 다시 돌아온 봄은 더 힘이 난다. 희망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