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갈 수도 없는 야자수 농장이어서 어제같이 바람이 센 날이면 걱정이 된다. 준 태풍 같은 바람에 비닐하우스가 무사할지,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밖에 설치되어 있는 배전반에 물이 들어가서 전기가 차단되지 않을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가슴이 철렁하고 혈압이 상승되는 느낌. 이런 다이내맥한 자연현상으로 야자 농장이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고 싶은 니즈가 생겼다.
이런 시골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데에 누가 침입하겠냐 그런 생각보다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밤에라도 농장에 가서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요즘 핫한 CCTV가 어떤 것들이 있나? 인터넷 쇼핑에 몰두했다. 주문한 CCTV가 왔고 농장 상태를 잘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 설치했다.
농장 주변은 참 여러 동물들이 살고 있다.
농장 한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비닐하우스가 있다. 야자 씨앗 발아실로 사용했다가 어느 순간 짐 보관 하우스로 전락해 버린 뒤로 그곳은 평소에 내가 자주 가지 않는다.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농기구 보관장소 또는 보온 담요를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 우연히 뭘 찾는다고 두리번거리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주황색과 흰색 빛이 도는 귀염귀염 한 고양이가 담요 속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나 보다. 고양이가 도망은 가야겠고 출입문은 한 개인데 그 앞에 내가 버티고 서 있으니 달아날 곳이 없었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고양이를 위해 문 앞에서 비켜주었고 그제야 문으로 나갔다. 어째 고양이 털은 저렇게 윤기가 나지? 누군가가 털을 빗어주나? 고양이가 있으니 쥐라도 없겠군.
CCTV 영상을 핸드폰으로 보고 있으니까 전에 몰랐던 것까지 알게 되었다. 고양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농장 주변에 이렇게 많은 생물들이 있다니. 꿩이 등장했다. 워싱턴야자 밭에 종종 나타난다. 장끼다. 긴 꼬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야자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것 같다. 작년에도 풀숲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았는데 올해도 그랬나 보다. 참 오랫동안 이 주변에 살고 있다. 좀 있으니 어.. 비둘기 같은 새가 땅 위를 걸어 다니고 있네. 이 친구도 먹이를 찾나? 하늘 위에서는 까마귀와 까치가 바쁘게 날아다니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네. 허수아비라도 세워놔야겠군. 바람이 빙빙 돌아가는 새로운 개념의 허수바이가 필요할 때다. 허수아비도 항상 새로워야 하니까..
야생 친구들은 이뿐이겠구나 싶을 때 뭔가 갈색의 4발 동물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고야 말았다. 아.. 뭐지? 가슴이 철렁했다. 고라니다. 고라니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농장 남쪽으로 산이 있기는 하지만 민가와 도로를 지나야 한다. 밤도 아니고 낮인데 여기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놀랍다. 아 역시 강화도는 아직 너무 자연 순수 그대로야. 이 친구도 먹이를 찾는지 고개를 숙인 채 워싱턴야자 사이사이에 코를 가져다 댄다. 앗 너 야자나무 잎을 먹으면 안 돼. 맛없단 말이야. 작년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신상품인가? 하고 한번 맛 좀 볼까?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 줘.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혼자 외친 들 들을 수 도 없고 답답한 지경이다. 허수아비라도 설치해야 하나? 정말 잎을 뜯어먹었는지 아닌지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없었다. 고라니는 점점 멀어져 갔고 영상의 낮은 해상도로 인해서 점점 갈색 통나무로 보였다. "휙 지나갔겠지. 이젠 안 보이네." 어찌 야생 친구들이 서로 순번을 정했는지 절대 동시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하하 이젠 정말 한 편의 동물 다큐를 보는 것 같다. 등장인물이 다양하다. 워싱턴야자 밭에 나타나는 야생 친구들 영상을 만들어볼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음.. 이럴 시간이 있으면 잡초 제거하는 게 어때?? 잡초들이 너를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하 심심하지 않겠어!
금세 구름이 몰려오더니 야자수 밭이 어두워진다. 비가 억수로 내릴 채비를 한다. 고라니야. 비가 많이 오니까 얼른 피해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비 내리는 것을 보면서 다시 궁금해졌다. 이렇게 비 오는 날 이런 동물들은 어디로 피할까?
생각하면서 다른 영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앗 지난번에 봤던 그 주황색 고양이를 비닐하우스 안에서 영상으로 다시 만났다. 역시나 비를 피하기 위해 바닥 문 틈 사이로 들어왔고 담요 위에 앉아서 비 내리는 것을 감상하고 있구나. 감성 고양이.
올해 초 봄에 만들려고 했던 것이 있다. 새 집과 새 모이통이다. 잡초제거에 몰두한다고 아직 제작하지는 못했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는 끝낼 계획이다. 겨울철 토종 새들이 먹이 눈 덮인 땅에서 먹이 찾는 것이 어려울 텐데 배부르게 겨울을 나도록 조금 도와줄 테다. 고양이와도 동고동락하도록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하거라. 쥐가 하우스 안으로 못 들어오도록 보초 역할하는 것을 잊지 말고..
다시 말하지만 정말 뱀만 보면 되는 건가? 그럼 다 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