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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Nov 11. 2020

나 자신으로 살기의 어려움

가을 편지 1편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을 이루었다. 아장아장 아직 불안한 걸음걸이지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존 사람들이 살아오는 방식을 이어받아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시즌 왜 알아주는 큰 회사를 다니려고 했지?라고 생각을 해봤다. 명함으로 나로 증명하고 우월감을 느끼려는 욕망이 내면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누군가가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나서 “너 참 열심히 살았구나” 포상을 해주면서 너는 이제 여유롭게 살아 라고 말해주기를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다. 그저 열심히 하면 되나? 불안하다. 알 수 없는 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맞춰 살아와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한발 뒤로 물러나서 인생이라는 큰 시간 속에서 본다면 참 허망된 것이었다. 나를 들여다볼수록 나는 분명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리얼 세상에 나의 존재는 묻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알아차릴 수 있어서..  나의 몸이라고 내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이라고 나의 생각이 아니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생각하기는 연습이 필요했다. 생각하기의 고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무수한 독서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시점에 사회적으로 인문학 인문학을 외치던 시기가 있었지..


 삶의 변화는 새로운 행동을 하다 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생각을 가지고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도전 과제였다. 흔히 말하는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기... 행동하기는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마음대로 살아갈 거야! 그리고 마음대로 행동한다? 그렇다면 마음이 편안한가? 행복한가? 당연히 아니다. 행동하기 전에 "나는 누구입니까?" 나한테 물어봐야 한다. 어떤 주제로 살아갈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답을 해야 하는데..  

"...."  '한다'  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생각했던 어른이라는 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 어려움과 나에 대한 답답함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먼 미래에만 살 수 없다. 현실에 발을 붙여야 그다음이 있다. 더 회사를 다니고 생업을 해결하면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의 근원적인 욕구를 알아보기로 했다. 방법은 별거 아니었다. 최소한의 리소스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러다가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기르고 세상에 퍼져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 본질적인 욕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흥적인 생각인지 아닌지 그 욕구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타임머신은 사람 머릿속에 있는 듯하다. 툭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간다.


 초등학생 때 관찰일기라는 것을 쓰는 숙제가 있었고 매주 봉숭아가 어떻게 자라는지 기록했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근처에 식물 가게가 없어서였는지 다른 식물을 구매해서 관찰 타켓으로 삼을 생각을 못 했다. 그 당시 책 읽기는 참 힘들어했지만 '오늘의 봉숭아'를 그리고 특징을 글로 적는 건 아주 재미있어했다. 그림 소질은 전혀 없었지만 나만의 그림 선을 가지겠다는 의식이 강했던가? 봉숭아 꽃 그림의 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웠다가 다시 손목에 힘주어 그리고를 반복했다. "아 맞아. 얼마나 많이 그렸던지 종이에 선 자국이 깊게 남았지" 그때 집에 586 컴퓨터가 있었다. 괜찮은 성능이었고 세상에는 하이텔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때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는 게임을 하는 오락기 정도로 인식했다. 집 베란다에서 기르던 식물과 거북이 등의 소재로 하이텔이라는 통신망으로 세상 사람들과 이어져봐야겠다는 생각은 어림없었다. 마치 바퀴가 발명되고 수천 년이 지나서야 가방을 만나고 그로 인해 이동식 캐리어가 세상에 등장하듯이.


 식물 기르기를 좋아했지만 어릴 적에 쭉 살았던 집은 봉숭아를 기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햇빛이 잠깐 아쉽게 들어오는 베란다는 어린 마음에 항상 춥게만 보였다. 시멘트라는 물질이 전해주는 느낌은 차가움 그리고 삭막함이다.

 “시간이 참 아마득하게 많이 흘렀구나! 그리고 벌써 은행 잎이 노랗게 물들었네.." 노랗게 변해버린 길거리를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 정원을 가꿔본 적이 없었는데도 몸은 정원일을 할 때의 행복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런 일을 해야겠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어도 앞 날을 미리 알 수 있는..' 큰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빼곡히 심겨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2009년 어느 가을날.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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