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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Dec 23. 2020

나는 한국의 열대지방에서 살고 있다.

날씨와 농부 3편

강화도는 새벽 기온이 영하권으로 접어든지 오래다. 땅에서 뛰어놀던 메뚜기며 여러 곤충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씨앗들은 땅으로 다 떨어지고 내년 봄에 싹을 틔워 또 농부의 마음을 가득 긁어놓겠지. 짙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낙엽 위로 부스럭 거리며 고양이가 다니는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이 없다. 야생 고양이도 사냥을 해야 할 텐데 발을 땅에 붙일 때마다 저리 바스락 거려서야. 낙엽 가득한 겨울 들판이 고양이한테 불리해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넌 진정한 야생이다. “이 혹독한 겨울에 살 곳을 만들어 줄게.. 먹이도 챙겨줄게.. 대신 겨울잠도 안 자는 쥐 좀 쫒아줘.. 가끔 유튜브에도 출연해줘..” 깨알 같은 소망이다.


 겨울은 춥고 황량해서 차분히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나무로 예쁜 온실을 만들고 그 안에 나무 난로 들여놓는다. 불을 붙이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들여다본다. 주위가 제법 따뜻해졌을 때 흔들의자 위에 앉는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올해 수집한 씨앗들을 들여다본다. 내년에 어디에 어떤 꽃들을 심을지 구상을 해본다. 간간이 온실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난로의 온기는 점점 더 몸을 나른하게 한다. "탁탁~ 탁" 난로 안에서 나무 타는 소리도 아련하게 들린다. 낮잠을 자볼까나?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낀다. 고요함에 빠져 나의 숨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친구도 초대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농장일을 하는 것이 어느덧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야덕(야자나무 덕후) 일상의 기쁨을 말하고 싶다.


해가 좋은 날 야자나무에게 물을 줄 때.

야자나무 잎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 지켜볼 때.

온실 의자에 앉아서 따뜻함을 맛보는 순간.

농장 일하면서 라디오를 듣는 일.

농장 한편에 만들 연못 구상할 때.

갈색 야생고양이와 친하게 지낼 법을 생각할 때.

봄에 해바라기를 어디에 심을지 고민하는 여유

좋아하는 일에서 크고 작은 행복을 느끼고 살아간다. 일상생활이 변했으니 진정 삶이 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 이것보겠다고 그동안을 버텨왔구나!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해가 좋은 겨울날 최고 낮 기온이 영하 6도 일지라도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는 무려 30도에 가까워진다. 그 안에서 열대 야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야자나무가 다 크게 자라면 야자나무가 가득한 열대우림이 될 텐데.. 그럼 한가운데 수영장을 파? 그러면 동남아로 여행이 온 듯한 느낌이 들까? 그럴 수 있다면 낮에 뜨거울 때 수영도 하고 좋잖아! 먼 미래 한 편의 또 다른 일상을 구상 중이다.

 호주 아저씨가 비닐하우스 안에 온도가 몇 도인지 묻는다. 30도 가까이 된다고 하니 내가 거기에 살고 있다고 깔깔 웃는다. 한국이 겨울이면 호주는 여름이다. 한국에서 야자나무를 재배하고 있는 나를 항상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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