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꾸미기 1차 프로젝트
이번달 초부터 나에게 뜻하지 않게 많은 시간이 생겼다. 비공식적으로는 3월 20여 일부터 휴가 상태이다. 아직 진행 중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회사로 오고 가는 큰 프레임을 벗어 날 수 있는 시간이다. 무작정 쉬는 것보다 회사원이 아닌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일종의 연습을 하는 느낌으로 4월 달을 살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농장으로 향하고 평소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을 농장 한 구석에 만들어 봤다. 붉은 벽돌로 디자인 한 수돗가를 만들어 봤다. 물을 틀고 물을 받고 뭔가를 물로 씻고 물이 외부로 배수되는 공간. 기본적인 기능을 필요로 하는 공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었다. 머무르고 싶은 정감 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회색빛의 시멘트로 마감이 된 수돗가보다 빈티지한 적벽돌로 외곽을 둘러쌓았다. 그러다 보니 준비해야 할 재료가 많아졌고 시간도 생각 이상으로 많이 소비되었다. 기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것을 접목해서 잘 만들어보려고 하면 어렵다. 머릿속으로 수돗가 정면 배경에 화단을 만들고 꽃을 피우게 할까? 아님 사철나무를 심어서 마무리를 할까? 계속 고민 중이다. 수돗가에 오랜 시간이 더해졌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이 더 나에게 편안함을 줄지를 기준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직 외관이 미완성이다. 이 와중에 수도꼭지를 고정했고 물 호스를 연결하면 기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 "아 뭐 참 쉬운 일이 없어. 일을 어렵게 하는 것도 나 자신이네. 나의 욕망이 나를 움직이게 하지만 나를 힘들게도 하네.. 하지만 그게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지.. 세상에 천천히 태어나게 하는 거야.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고.."
수돗가 벽돌의 시멘트가 굳는데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다행히 페이스 조절에 있어 힘들어하는 나에게 어쩔 수 없는 여유를 주었다. "내일 이어서 하자.."
이런 작업을 해보면 몸이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허리가 뻐근한 것도 손가락이 아픈 것도.. 이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GTA 농장 게임 속 공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가상공간에 "짠" 하고 플레이어가 생성됐다. 하늘 위 약간 멀리서 지켜보면 농장 전체 모습이 들어오고 나의 위치도 파악이 된다. 땅의 굴곡도 눈에 들어보고 다행히 나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잡초들은 불투명 수채화 기법으로 어렴풋한 예쁜 잔디로 그려져 있다. 잠시나마 행복하게 한다. 직접 만든 벽돌 수돗가도 한쪽 위치에 잘 나타나 있다. 수도꼭지도 돌려보고 수돗가에 걸터앉아 본다. 신체 사이즈에 맞게 잘 만들어졌네.. 넓이가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고 두 사람이 앉으면 딱 맞는 크기다. 올 가을 은행열매를 주워서 여기서 냄새 하는 껍질을 제거하면 고되고 인상 찌푸리는 느낌이 아닌 재미나고 자연 속에서 안락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돗가의 시멘트는 굳어야 하니 플레이어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온실을 만들려고 하는데 오늘은 기초작업만 할 것이다. 오늘의 온실 업무. 사각형 라인 따라 땅을 20cm 파고 그 속에 콘크리트 벽돌을 배치한다. 벽돌 수평 잡고 시멘트를 부어서 고정을 시키기.
온실을 은행나무 사이로 절묘하게 위치를 잡았다. 봄날의 연둣빛 푸르름, 여름의 노색 빛, 가을의 노란 단풍, 겨울의 투명한 햇빛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온실 옆에는 연못을 만들어야 하니까 길이는 4미터로 해야 하고.. 플레이어에게 땅을 파라고 했다. 돌이 많은 장소라 곡괭이질이 시원치 않다. 철 금속과 돌의 마찰음 소리가 가득하다. 라인 옆으로 비옥한(?) 검은색 흙이 쌓이고 하나둘 벽돌로 빈 공간을 채운다. 벽돌 옆으로 철근을 덧대고 공사현장으로 40kg의 몰탈을 두 포대 옮긴다. 물을 붓고 시멘트가 잘 반죽될 때까지 섞도록 한다. 실제 이런 게임이 있다면 손목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굉장히 지루한 작업에 로그아웃해버렸을 걸? 아 이제 시멘트가 굳기를 기다리자. 플레이어에게 휴식을.. 어림도 없지..
농장일과 동시에 육아도 계속 진행 중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좋게 생각을 하자. 농장일도 베이스가 필요하다. 무작정 홀로 시작한다면 지속할 수가 없다. 지속할 수 없으면 성장도 없을 테고 이어서 재미도 없을 것이다. 그 악순환에 빠진다. 아기가 커서 돌이 지나고 이제 아장아장 걸어 다닌다. 가족이 정말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 덕분에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달라졌다. 카페를 가도 커피 마시고 너튜브 시청하는 것에서 아기 눈높이에 맞춰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카페 마당에 있는 돌멩이를 아기와 앉은 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신기한지 돌멩이를 여기 만지고 서툰 손가락질로 더듬더듬 겨우 다른 면으로 돌려서 가만히 본다. 이내 겨울내 바싹 말라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주워서 만지작 거리고 입으로도 가져가기도 한다. 그러면 눈과 손은 더욱 바빠진다. 제제했더니 이내 나뭇가지에서 나온 새잎으로 손이 이동한다. 잎을 뜯으려고 하는가 보다. 아이의 눈과 손이 향하는 곳을 한 순간도 떼지 않고 지켜보게 되면서 나 또한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눈길을 주게 되고 마음에 잔상으로 남게 된다.
터덜터덜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길. 요즘 세상에는 추상에서 파생된 존재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없는 것이 뜬금없이 탄생해서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왜 꼭 새로운 것이어야 만 했을까?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시작해도 되었을 텐데.. 추상과 파생의 관계를 생각해볼 때 나의 세계관이 공존 측면에서 적합한 걸까? 나의 행동도 파생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