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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Jan 14. 2020

겨울 동물들의 공유 경제

비닐 하우 안에서 야자나무 묘목한테 물을 주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기에 밖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화분들 사이로 거무스레한 뭔가가 휙 지나갔음 느꼈다. 물세례를 맞아서 도망가는 쥐인 듯했다. "헉. 쥐다. 이 녀석 철옹성 같은 곳을 어떻게 들어왔지? “ 어디에 숨었는지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추운 겨울에는 조용히 지내려나 싶었는데... 재빨라서 직접 잡을 수는 없을 것이고 이대로 동거를 해야 하나? 싶었다. ”여기 걱정거리 하나 추가요. “ 그로 인해서 겨울잠을 자지 않는 포유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두더지와 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의문이 풀렸다. 그 이후 언제부터인가 땅바닥이 울룩불룩 땅 밑으로 뭔가가 지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저게 바로 두더지 굴인가? 넌 도대체 어디서 왔니? 여름 동안은 안 보이다가 왜 이제 나타나는 거니? 한 번 삽으로 파볼까? 피부가 하얗고 털이 복슬복슬하게 생긴 녀석이 땅에서 훅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약간 긴장이 된 상태에서 삽으로 땅이 융기된 부분을 파 보았지만 뻥 뚫린 땅굴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의 걱정거리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점점 비닐하우스 쪽으로 땅굴이 다가가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쪽이 따뜻하다는 것을 눈치챈 건가? 하우스 땅 아래에서 겨울을 나려고 하나 본데. 지나가던 어르신 1이 나타나서

“두더지 약 쳐. 그거 잡아야 해. 농작물 다 먹어치워. 고구마든 감자든 에휴 아무튼 빨리 잡아.“   

“.....”

뻘쭘해하면서

‘고구마 재배 안 하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올커니 쥐가 두더지 굴을 지나서 하우스로 왔구먼. 두더지도 잡아야겠다.“ 본능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레인은 잠시 스택에 생각 주소를 넣어 두고 다시 상상한다. 어두컴컴한 굴을 지나고 있는 겨울 쥐가 코를 실룩이면서 끙끙댄다. 복잡하게 연결된 두더지 굴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쪽으로 가볼까?” 아 이쪽 이쪽.. 쪼로로로 비닐 하우스 안에 도달했다. 미로 같은 땅굴을 지나서 비닐하우스 내부로 뚫린 출구로 나온 쥐한테는 횡재였겠지. 나라는 불상사를 만나기 전까지. 겨울잠을 자지 않는 포유류가 추위를 이기고 살아가는 데는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공유 경제에 있다. 쥐는 약한 앞발로 직접 굴착하기에는 큰 비용과 손해 부담이 크다. 쥐는 땅을 파는데 최적화된 앞발이 아니다. 하는 수 없이 겨울 쥐도 살아야 했고 그래서 두더지의 땅굴을 이용하기로 한다. 비좁은 땅굴에서 서로 만나는 불상사는 없겠지. 아니 서로 공유하기로 합의를 봤나. 각자의 장점을 세상에 제공한다. 두더지의 굴착 능력은 겨울 땅이 얼어도 끄떡없다. 딱딱한 땅이 속절없이 뚫린다.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하도를 따라 멀리 이동할 수 있다. 겨울 세상 밖으로 나갔다가 입구를 다시 찾지 못해 동상을 걸리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두더지가 비닐하우스 안으로 출구를 내놓게 되면 따뜻한 열대 나라에서 룰루랄라 할 수 있게 된다. 곳곳에 뿌려 놓은 고구마로 배가 빵빵하게 먹을 수 있고 뭐 까짓 거 잡히더라도 고구마 가득 먹고 똥도 한쪽에 가득 싸놓고 배 때리면서 감옥생활 며칠만 하면 마음씨 착한 농장주가 나타날텐데.. 그럼 다시 풀어 줄테고 다시 두더지가 열심히 파 놓은 굴을 이용해야지. 하하하 끈끈이 덪보다 생포를 목적으로 하는 트랩을 설치하는 농장주 덕분이라 생각하겠지. 쥐들 아이큐가 높아지는 분명한 느낌이 온다. 올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겨울 동안 호의호식했던 기억을 떠올려서 아예 이 주변에 터를 잡을지도 모른다. 찍찌지지찍 앙칼진 소리를 내면 무서워서 처치할 생각은 못하고 빨리 밖에서 풀어주겠쥐. 그래야쥐. 2020년 쥐해니까. 하하하

 두더지의 생활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다. 겨울잠을 안 잔다. 그리고 끊임없이 땅을 판다. 소리에 매우 민감하단다. 눈에 보이는 땅굴은 일부분 일 것으로 짐작된다. 깊숙이 얼마나 많은 땅굴이 길게 이어져 있을까?  길 넘어 산자락 아래까지 연결되었을 수도 있다. 소리에 민감하다고 하니 열심히 발을 굴려도 보기도 했지만 이내 집어치웠다. 그러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내쫓기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두더지 약과 퇴치기를 판매하고 있지만 약은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퇴치기는 개당 가격이 몇만 원 대여서 부담이다. 그런데 쓸 돈이 없는데 말야. 이렇게 땅을 파헤치는데 그냥 두고 볼 수도 없고.. 살짝 미간이 찡그러졌다. ‘여기 걱정거리 하나 더 추가요’ 두더지는 소음에 민감한데 사람이 계속 농장에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정해진 타이머에 소음이 발생되도록 해야 한다. 두더지 퇴치를 위해 층간 소음 우퍼를 생각하다. 이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하는 수 없는 집에 굴러다니고 있는 싸구려 스피커를 생각했고 음 타이머를 연결해서 주기적으로 소음을 일으키면 될 것 같은데.. “쿵쾅거리는 노래를 골라서 틀지 뭐” “엉덩이 실룩이리지 말고 얼른 도망가라구...”  

 생포용 트랩을 결국 철물점에서 구매했다. 고구마를 미끼로 걸어두었다. 고구마의 유혹일 이기지 못한 쥐는 통 속에 갇힌다. 트랩을 설치해두고 이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레인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아하하하 귀여운 쥐가 잡혀있네! 사람을 보고도 발버둥 치지 않고 유심히 나를 본다. 눈은 똥그랗고 다리는 짧고 배는 고구마를 다 먹어서 인지 우리 집 웰시코기와 같이 불룩 튀어나왔고 입과 코 주변에 솜털이 복슬복슬 했다. 강아지 주둥이와 비슷하다. 귀여운 녀석이었다. 나 그냥 보내달라는 건지 두 앞 발을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 처음부터 생포가 목적이었으니 트랩을 들고 하우스 밖으로 나갔고 멀리 떨어진 덤불 속에서 트랩 출구 문을 열어 주었다. “다음에 빈손으로 오지 말고 박씨 하나 물어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시 2주일이 지났다. 잊고 지냈는데 위 상황의 반복이다. 걸려든 쥐는 배부르게 먹고 배 때리고 누워있다. “너가 그때 너인지 아니면 새로운 너인지?” 와이프 등장. “가가가가?” 나를 보고 무서웠던지 쥐가 앙칼지게 소리를 빽 질렀다. 박씨 하나를 안 가지고 온 걸 보니 다른 녀석이구나. 너희들은 참 행복한 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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