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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Jan 10. 2020

야자수농장 땅따먹기 게임

농장주와 잡초와의 전쟁 워리어~

2018년 12월 퇴근길 버스 안이었다. 버스 밖의 날씨는 추웠고 버스 안 창에는 온도 차이로 인해 짙은 성에가 생겼다. 꿉꿉한 버스 안 공기가 레인을 더 답답하게 했다. 야자수를 잘 기를 땅을 찾고 있었고 마음대로 쉽게 나타나지 않아서 안달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으로 부동산 사이트를 열심히 뒤지다가 앗! 이 땅이다 싶은 매물이 눈에 나타났다. 무료한 일상에 한 줄기 신바람이 불었다. 가격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사진으로 본 땅의 모양은 너무 편안해 보였다. 주위에 은행나무들이 둘러싸여 있고 키 작은 풀들이 땅에 넓게 퍼져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즉시 부동산에 연락을 했고 가까운 주말에 땅을 만나기로 했다. 정말 원하는 땅이었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 어떤 땅일지 막 상상을 하면서 행복해했다. 드디어 한국에서 야자수를 기를 수 있는 것인가? 나만의 정원을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야자수 농장을 생각할 무렵 오랜 직장생활에 지쳐있을 때였다. 그래서 쿨하고 휴가를 내고 아내와 태국 여행을 갔다. 무료한 직장생활을 탈출하고 싶은데 그다음 내가  내가 현재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 말고 다르게 할 것을 탐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면 뭘 해야지? 탐색의 시간이 정말 길었다. 주말이면 미술관도 가보고 공방도 다녔다. 태국 여행 중에 야자수를 생각했지만 바로 직장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야자 씨앗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야자나무 씨앗은 제법 비싼 편에 속하다. 크기도 클 뿐이 아니라 해외에서 구매를 해야 하므로 배송비까지 지불해야 하니까 꽤 돈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국에는 겨울이라는 크나 큰 장벽이 있다. 그 무서운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아니면 야자수 나무를 기를 수 없다. 맞다. 견고한 비닐하우스가 필요하다. 그 비닐하우스를 짓는데도 꽤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당분간은 전략적 근무를 해야 했다. 썸을 타는 듯 회사 일을 하면서 몰래몰래 야자수 나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해외 사이트를 둘러봤고 조금씩 자료를 모아나갔다. 야자 씨앗을 해외에서 구매하면 배송이 오래 걸리니까 미리미리 구매해 둬야 했다. 누구누구 씨앗 판매자가 크레딧이 좋은지 살펴봐야 했다. 비싼 씨앗을 구매했는데 엉뚱한 것이 온다거나 씨앗 상태가 엉망이면 안 되니까. 그러면 기다린 몇 주간의 시간이 빠잇이니까. 소중한 나의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니까.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험난했다. 여러 장애물들이 많았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들만 열심히 하면 되었지만 야자수 재배 일은 처음부터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다. 씨앗 선택, 구매, 발아, 모종 키우기 등  구간별로 난관이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가족의 지지를 받는 일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너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일을 지속할 수 있느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와이프는 이런 나를 잘 이해해줬다. 야자 씨앗 발아에 실패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얼굴이 일그러져도, 내가 짜증을 내어도 와이프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지냈다. 오히려 씨앗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을 해줬다. 가족의 도움으로 조금씩 발아 노하우를 쌓는 데 성공했고 그다음 단계인 땅 구매까지 성공했다.


 이제 이 땅에서 야자수를 크게 키우면 되는 일인가? 무척 신나 있었다. 소형 땅 크기 정도면 내가 하루 이틀이면 다 커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시작부터 걱정보단 지나친 희망이 좋다. 그 희망과 즐거움은 한 달을 넘지 않았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그 땅의 터주대감인 바로바로 잡초였다. 일주일이면 무섭게 200평의 땅을 내가 감당하지 못 할 정도로 퍼져나갔다. 싫어하는 환삼덩굴이 왜 이렇게나 많은 것인지 퇴치 도중에 덩굴이 나의 발목과 손가락에 상처를 입혔다. 한바탕 땅따먹기 대결이 일어났다. 나는 혼자, 덩굴과 잡초는 수만. 초 여름이 오는 사이에 일대 수만의 전쟁이 일어났다. 난 분명 야자수를 기르려고 땅을 구매했단 말이야.! 이건 뭐 지나가는 제 3자가 보면 잡초제거 일을 하기 위해 땅을 주고 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가 방심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대로 올해 야자수 농사를 망치는 것인가? 진심 어린 걱정이 밀려왔다. 이런 심리전에서 조차 벌써 뒤지다니. 윽. 안 되겠다. 질 수 없지. 너희는 인해전술로 이 땅을 점령하겠다면 나는 화학전을 펴겠다. 친환경이 좋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그동안 손으로 일일이 다 뽑고 있었는데 그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코 권하지 않는다. 농약 방에 가서 친환경 제초제와 약 분무기를 구매했다. 분무기 통을 등에 메고 땅 곳곳에 자리를 잡아가는 잡초를 향해 약을 뿌렸다. 내가 이길까? 한 번만 뿌리면 되나? 뿌리는 내내 생각이 들었다. 효과는 일주일 뒤에. 아하하하 곳곳에서 잡초의 전멸이 일어났다. 흠 이제 야자수에 집중하면 되겠군. 기세 등등하게 야자 육묘실을 만들고 열선을 설치하고 흙을 붓고 야자 씨앗을 흙에 손으로 쿡쿡 심었다. 자 이제 기다리면 되겠군.


 이제 완전 농부가 된 것 같았다. 평일에는 직장 회사원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이면서 일을 하고 주말이 되면 흙이 온몸으로 튀는 야외 필드 현장에서 농부로 일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 모습을 스스로 어색하게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지 않나? 어떻게 생각하려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쭈뼛거리기를 반복했다. 원해서 하였음에도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행동이 어색해서이다. 4월이 넘어가면서 햇볕은 점점 강해져서 얼굴을 햇빛에 타서 점점 검게 변해갔다. 5월이 되니 농장 주변이 정말 아름다웠다. 세상이 연둣빛으로 물들고 훈훈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켜니 ‘아 내가 원하던 일이야. 너무 좋다’ 생각이 절로 나왔다.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는 이 느낌. 기온이 점점 오르면서 얼굴에 흙이 묻고 손톱 밑에 때가 낀 날이 많아질 무렵 나는 외쳤다. 나 완전 농부 됐어. 돌아보니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나도 모르게 농부가 되는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잡초가 있었으니까 내가 농부가 된 셈이었다. 그동안 직장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해 줬다. 그리고 직장 일의 어느 한 부분 역할을 맡아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심리적 프레임을 벗어나야 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은 잡초인 내가 차지할 것이라고 몸소 실천으로 나에게 압박을 가해줬다. 초반부터 농장일을 내가 주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끌려다녔다. 잡초와의 화학전이 나의 승리로 끝나나 싶었지만 그것도 길어야 한 달이었다. 2차전 3차전 대전의 연속이었다. 농장일은 잡초와의 땅따먹기다. 에잇 내년에는 효율적인 승리를 위해 예초기를 구매해야겠다.


 농장의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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