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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Jan 20. 2020

20년 전에 내리던 비

흔들리는 비와 야자나무

12월  날씨가 썩 좋지 않다. 광량이 줄어든 회색 하늘빛. 그리고 하우스 안에서 고민하고 있는 레인. 비닐하우스에 울려 퍼지는 두툼한 빗방울 소리. 두두두둑 두두둥둑 둥두두두두둑.. 비가 두들이는 하우스 울림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려 눈 껌벅임 없이 투명한 비닐 너머의 하늘의 회색 빛 구름을 올려봤다. 간간히 불어닥치는 바람으로 인해 하우스 비닐이 떨리면서 불안정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숨죽였다. 하는 일을 멈추고 소리에 집중했다. 올해는 겨울비가 여름 소나기처럼 내린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빗소리를 들어본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까 느끼면서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집도 아파트이고 평일에는 회사 실내에 있어야 하니까. 비와 관련된 이미지는 왠지 안 좋다. 출퇴근 길에는 사람을 피해다니기 바쁘다. 발걸음도 바쁘다. 평소보다 더 도로에 교통체증을 일으키고 물 고인 웅덩이를 피해가야 한다. 예민해진다. 인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본다. 다들 비를 반기는 표정이 아니다. 옷과 신발을 젖게 해 꿉꿉한 기분을 전해준다. 어두운 회색으로 물든 하늘 빛은 눈을 왠지 모르게 피곤하게 한다. 출근길 얼굴이 굳어졌다. 출근길.. 그 사회적 약속 같은.. 누군가와 일생 속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벽과 파티션으로 둘러 쌓여 있는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 때론 끔찍하다. 차라리 창밖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창가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으면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잔뜩 주름져있는 얼굴의 미간이 쉴 수 있겠다. 긍정적인 대상의 '비' 라기보다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하는 비였다. 우산 천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마음으로 받아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가까이 있었는데 외면하고 말았다. 빗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멀어졌다.


 2011년에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잘 다니던(?) 은행을 떠나기로 생각했다. 은행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평소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소규모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면서 약간의 자극을 받았다. 그 친구와는 평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답답한 회사 생활의 피로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잊곤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그해 겨울은 무척 추웠다. 여름에 장마비로 도시가 물어 잠길 정도로 많이 내렸고 겨울에는 매서운 한파가 자주 찾아왔었다. 눈도 많이 내렸다. 눈 내린 골목길에서 서성이면서 전화 통화를 했다.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이 주는 답답함 앞에 가만히 서서 통화를 할 수 없었다. 현재 스스로를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고 여겼고 다가 올 가까운 미래에는 삶의 프레임을 가진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독립적이면서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세상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 돈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더 부럽다고 생각한다. 대화가 깊어지는 만큼 서성임도 바빠졌다. 온 골목길을 헤매고 다녔다. 움직일 때 마다 눈밟는 소리가 났다. 앞 집 거실 커튼 사이로 삐져나온 가냘픈 흰 빛이 발자국을 어렴풋이 비추었다. 나의 발자국이 온 골목길이 가득했다. 불꺼진 앞 집의 사람이 듣고 헛웃음을 짓지 않을까? 대화가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 2019년 12월 초에 대구에서 살고 있는 그 친구가 야자나무 농장을 방문했다.

“올해는 정말 이상하다. 비가 많이 내리네..”

땅 위에 널부러져있던 비닐 포대, 하우스 파이프 등을 옮기는 작업을 같이 했다. 혼자 였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정말 순식간에 마무리했다. 일을 마치고 한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파주의 한 미술관으로 갔다. 겨울비가 여름 장마비처럼 내린다. 짙은 안개 사이로 한강 위의 기러기들이 간간이 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게 너와 어떻게  오랫동안 알고 지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

"사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때도 서로 그렇게 친하진 않았는데 말야..."

 그렇고 보니 맞는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그래. 맞아 그랬어. 도형이를 통해서 같이 만나곤 했지 서로 직접 연락해서 둘이서만 놀지는 않았지.“

"그러게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오래 알고 지내게 되었을까?”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였다.

“너가 중3때 나한테 편지를 보냈어. 그리고 고1때도 전화 통화를 1시간 정도로 상당히 길게 얘기했어.”

"나는 중 2때 다른 도시 학교로 전학을 갔으니까"

“너가 고민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애”

 “그 시절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을 때지.”

 “고민을 얘기하면 내가 들어줄 사람으로 직감적으로 안 거지.”

“....”

 “그래 맞는거 같다”

 손벽을 마주쳤다. 대화를 한참 이어갔다. 오늘 참 이런 이야기를 하기 좋은 날이다. 점점 겨울이 깊어지고 해가 짧아져간다. 비를 맞은 나무가 점점 검고 선명하게 짙어져간다. 반대로 점점 옅어져 가는 물안개를 내려다 봤다. 자유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 물안개는 거기에 머물고 있다.

 

 중3학년 때이다. 1999년 여름이다. 3층 교실 창문 턱에 재인이와 걸터 앉아있었다. 교실에는 나와 그 친구 뿐이었다. 다른 학급 친구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청소를 끝내고 하교할 무렵에 창문 밖으로 소낙비가 주르르르르 주르르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말 없이 3층에서 비 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참 많이 내렸었는데 그 광경에 빠져서 친구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춘기였던 레인은 그때부터 빗소리를 좋아하게 된다. 온 몸으로 젖어보기도 했다. 낭만이었다. 비가 나와 세상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였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자각하게 되는 시기가 되었다. 처음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눈동자를 바라보는데 그게 너무 이상한 했다. “뭐지?” 눈동자에 나의 모습이 비춰져 있었다. 또 그 속에 거울이 보이지 않을까? 유심히 들여다 봤다. '아 나라는 사람이 거울에 서 있네. 내가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이전의 나는 뭐였지? 드디어 3차원 공간에서 나의 바디 라인 안에 있는 부피만큼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 정말 오래된 기억이구나. 벌써 20년이 되었네. 그때 비를 함께 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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