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리데이파머스 Jan 17. 2020

호주아저씨 이야기

“퀸즐랜드 놀러와”

#1 호주의 동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퀸즐랜드 케언스 도시 부근에 살고 있다. 그곳은 호주 북부지역으로 적도와도 비교적 가까워서 큰 기온차가 없는 온화한 지역이다. 그의 집과 제일 가까운 동네이웃집까지 거리는 1km 떨어져 있다. 몇 만평이 넘는 넓은 땅을 소유한 사람이고 그곳에 빼곡히 야자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이다. 소철, 알지 못하는 호주 고유 식물들. 마당은 무슨 리조트처럼 야자나무로 잘 가꾸어 놓았다. 멋지다. 무슨 야자나무 인지 이것저것 물어보면 귀찮을 듯한데 그런 기색 없이 사진을 첨부해서까지 대답을 잘해 준다. 레인이 지금껏 알고 지냈던 사람과는 너무나 달랐다. 다른 나라의 그 누군가와 일상생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해 본 적이 없다. 그는 레인보다 더 세상을 오래 살았고 3명의 자녀들을 키웠다. 아직 젊은 레인은 백인 아저씨한테 고민거리를 말하면 그는 최대한 답변을 잘해 주려고 한다. 와이프가 임신했고 올해 출산한다고 말하니 축하해줬다. 곧 태어날 아기가 밤에 자꾸 울어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차에 태워서 드라이브를 하란다. 차가 전달해주는 진동이 아기를 재울 거란다.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신이 젊었을 때 시드니에서 의료 기기 엔지니어 일을 했을 때의 수입이야기, 시드니에서 코코넛 야자를 우연히 기르게 되었는데 바싹 말라서 죽어버린 이야기, 숲 탐험이야기, 자녀 교육 이야기. 헬기 조종이야기 뭐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다.

 열대지역이면 야자나무만 많을까? 노노 가지각색의 뱀, 캥거루, 두발로 다니는 동물들, 개구리들, 새들. 그는 호주 동물 이야기를 자주 해 준다. 호주에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동물이 많다고 했다. 흔히 캥거루가 떠오르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란다. 메신저로 하나씩 전해오는 여러 사진들.. “하나같이 두 다리로 걷는 동물들이네. 몰랐던 동물들이야” 맞장구치는 것은 또 잘하지. 뱀을 싫어한다고 하니까 또 이어서 일상생활 속에서 만난 뱀 사진을 연달아 보내준다. 신이 난 모양이다. 뱀이 자동차 보닛에 들어가서 아직 식지 않은 엔진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집 안 세탁실 안으로 들어와서 수도꼭지를 감싸고 있는 모습. “그렇게 집 주변에 뱀이 많은데 와이프가 안 싫어해요?” "나는 그런 상황이면 항상 안전하게 구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와이프는 뱀을 너무 싫어한다.“ 그는 아쉬워했다.


#2 비가 잔뜩 내리는 날엔 먼저 레인에게 연락한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 정원 어딘가 앉아서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있었나 보다. 개구리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또 새로운 종의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었다고 기뻐한다. 소리를 들을 수는 없고 사진이라도 좀 보내달라고 하니 좀 뒤에 메신저로 여러 사진이 전달되어 왔다. 알록달록한 개구리가 손바닥 위며 컴퓨터 모니터에 붙어 있거나 창문에 달려 있었다. 그는 소리를 구별해해는 재주가 있다. 빗소리에 섞여서 구분이 잘 안 될 것 같은데 대단합니다. 그리고 집 마당 정원에서는 맨발로 다닌단다. 뱀에 물리면 어떡하냐고 그러지 말라고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그게 더 좋다고 한다. 뱀 따윈 걱정이 안 되나 보다. 뭐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큰 뱀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만지는 정도인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3 그는 열대 야자나무를 너무 사랑한다. 어떠한 야자 사진을 보여주더라도 척척 이름을 알아맞춘다. 대단한 식물 러버다. 그뿐만이 아니다. 집 주변이 야자나무로 둘러 쌓여있다. 호주 고유종부터 시작해서 세계 야자나무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야자가 즐비하다. 얼마 전에는 집 근처 사탕수수 회사에서 얻은 철문 프레임에 시멘트를 부어서 1톤짜리 테이블을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진으로 본 테이블이 묵직했다. 그의 어린 막내아들이 그 위에서 코코넛 열매를 올려놓고 칼로 쪼개고 있었다. 그 사진을 나에게 보여줬다. 역시나 아들도 맨발이다. 사진에 편안함과 넉넉함이 묻어났다. 레인은 그 순간 질문을 했다. “정말 부러운 생활입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동남아로 여행을 가야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생활이네요. 호주는 땅이 넓고 환경이 좋고 그래서일까요?” 그는 대답했다. “당신의 삶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입니다.” 이 말을 듣은 레인은 생각이 날 때면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영어가 짧은 관계로 더 진중하게 물어볼 수 없었다.


#4 호주 아저씨는 한국에 대해 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역사에 의외로 관심이 많았고 나도 모르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줬다. 태즈메니아섬 원주민이야기, 일본인들의 홋카이도 침공, 호주 아저씨의 마당에서 땅을 파면 쏟아져 나오는 석기시대 원주민들의 돌도끼들... 그리고 최근에 뉴기니아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오지 탐험을 하다가 세계 2차 대전때 일본군이 파놓은 참호를 발견했단다. 약간의 깊은 동굴이 있었고 거기를 들어갔는데 그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철모와 포탄을 주웠다. 포탄은 폭발할 위험이 있어서 가지고 오지는 못 하고 철모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사진으로 본 철모는 녹이 제법 슬어 있었다. 썩 괜찮아 보이기도 해서 녹을 제거하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녹을 제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철모는 과거 그들이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 줄거다.” 녹슨 철모를 보면서 시간의 덧없음을 일깨우려는 듯 했다.


#5 그와의 대화는 실시간이다. 그곳의 밤은 별이 무척 잘 보인다고 한다. 별 사진을 여러 장 보내줬다. 우리 은하의 중심부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별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끼게 한다고 했다. 레인이 천문학 전공을 했다고 말하자 본인도 어렸을때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서 야자나무 풍경에 마젤란 은하가 찍힌 사진을 보내왔다. 그는 깊은 밤 어두운 열대우림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동물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기에 지금 아마도 어두운 마당 어딘가에 앉아서 별을 보고 있나보다.


 최근 호주 산불로 인해서 시드니 부근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먼저 안부 인사를 해도 바쁜지 한참 뒤에 연락이 온다. 지금 이맘때쯤이면 호주아저씨가 살고 있는 곳은 건조하고 가뭄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그 건조가 좀 심했는지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사태가 빨리 좋아졌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클레인 사랑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