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탈탈 털어버리고 싶어
2019년 입춘이 지났고 3월 초였다. 이제 여기 강화도에도 슬슬 땅이 녹기 시작한다. 그동안 기간을 알 수 없었지만 꽤 오랜 시간 휴경지였던 이 땅. 이 말은 즉, 땅 위에 잡초가 가득하다는 말이다. 이제 봄기운이 제법 풍기는 시기이다. 이제 예비 농부의 마음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겨울 내내 시든 채 땅 위를 덮고 있었던 잡초를 제거해야 했다.
평생 살면서 잡초제거를 해봤어야 말이지. '다른 농부들은 땅에 불을 질러서 잡초를 태우던데..' 혹시 모를 화재 걱정에 초보 농사꾼인 만큼 안전하게 가자고 생각했다. 이 넓은 땅을 갈퀴를 이용해서 손으로 잡초를 끌어당겨서 제거할 수 없는 노릇이고 결국 포클레인을 4시간 대여하기로 했다.
아침 7시면 햇빛이 내리쬐는 땅이다. 그걸 보면서 내심 잘 샀다고 속으로 흐뭇해했다. '해가 잘 들어오니까 야자나무 기르기에는 딱이겠군. 이렇게 해가 잘 들어오는 땅이 흔치 않은데 말이야' 아침에 내리쬐는 햇살이 올해의 전망을 밝혀주는 듯했다. 설레는 마음에 땅 곳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히 봤다. 포클레인이 땅 곳곳을 휘젓고 다니니 한 시간 채 되지 않아서 드디어 진한 갈색의 맨 땅이 드러났다. 땅 속에 스며있었던 습기가 아지랑이가 되어 바람에 풀풀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지랑이도 날리고 이제 땅이 녹았을 테니 이 부드러운 흙을 평평하게 펴서 농장 개척을 시작해야지. ”
기쁜 마음도 잠시 마음에 어둠이 내리는 순간은 그로부터 머지않아서였다. 엄청난 복병이 땅 속에 숨어있었다. 정말 어머어마했다. 땅 속에 큰 자갈돌들이 많았던 것이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정리하다가 땅 속에 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클레인 기사도 "뭔 돌이 이렇게 많아" 하면서 허허 웃을 정도였다. 자갈돌이 많으면 배수가 잘 되겠지라고 위안 삼으려고 했지만 삽질하기가 힘들었다. 고랑을 내고 모종을 제대로 심을 수는 있을까? 야자 묘목이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있으려나? 삽을 땅에 박아 넣으면 삽이 흙속으로 들어가다가 삽 끝부분이 돌에 부딪쳐서 금속 소리가 쩡하고 났다. 일정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땅 대부분이 이러니 “나 어떻해!”
부드러운 흙을 손에 묻히면서 야자나무 모종을 심으려는 그 기대를 가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돌을 제거하기 위해 모종삽과 호미를 동원해서 파보았다. 대략 20-30cm 깊이에 돌이 무더기로 나왔다. “이러니 삽이 안 들어가지.” 큰 돌은 제법 무거웠고 땅 밖으로 빼내는 것도 힘들었다. 땅 속에 오랜 시간 박혀있었으니 주변 흙들과 한 몸이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땅은 돌무덤 같았다. “이래서 강화도에 고인돌이 많은가? 신석기시대에 고인돌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땅이었군” 한숨 섞인 혼자 말을 중얼거리면서 옆으로 이동하면서 돌을 파냈다. 이따금씩 내리는 눈과 바람을 맞으며 포기는 이르다면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갔다. 돌과 부딪치는 충격이 삽을 통해 고스란히 손목에 전해졌다. 본격적인 농부가 되기도 전에 손목 이상으로 요양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정말 이놈의 돌맹들이었다. 휴~ 주말 시간은 일분일초가 너무 소중했다. 평일에는 작업할 수 없으니까 머릿속의 계획대로 진도가 나가려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었다. 기반이 잘 갖춰진 직장생활만 해보았지 땅 파기부터 하우스 크기 위치 선정, 부품 구매 등 사소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시간 대비 진척은 터무니없이 제자리였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인건비를 아끼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 넓은 땅을 혼자서 돌을 제거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시간을 속절없이 지나가고 이제 큰 돌도 좀 제거했겠다. 이만하면 농사의 기본 필수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던 비닐하우스를 지어보기로 했다. 비닐하우스 시공 업체를 인터넷으로 찾아 가격 견적을 받아보았다. 생각보다 금액이 많이 나와서 “이까짓 비닐하우스 내가 직접 지어보겠어. 파이프 세우고 비닐을 덮으면 되는 거잖아. 별거 아닌데..” 시작부터 내 손으로 직접 해보겠다는 의지로 분발했다. 직접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한 자존심이 있었다. '이래 봐도 공대를 나왔는데..' 첫 번째로 주변 농자재 마트에 가서 비닐하우스 파이프 벤딩을 주문했다. 그리고 비닐과 기타 잡자재를 구입했다. 자재가 배송이 되었고 그나마 돌맹기가 없는 위치에 하단 파이프를 망치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 때문에 파이프가 땅속 20cm 깊이 밖에 들어가지 않아 손을 놓게 되면 파이프가 혼자 힘으로 서있을 수 없었다. 무경험자라면 20cm면 충분해 보이지만 절대 튼튼한 하우스를 지을 수 없다. 바람에 휙 날아가버릴 것이다. 땅 속에 숨어있었던 복병이 무서웠다.
'나의 그 님을 또 불러야 할 때인가?'
눈에 잘 드러나지 않은 기초 기반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파이프 볼트 체결도 쉽지 않았다. 일을 두 번 해야 할 수 있으므로. 사소한 결정의 연속에 레인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내가 결정 장애자인가?’ 싶을 정도로 머뭇머뭇거렸다. 해 질 무렵까지 고작 한 것은 하우스를 지을 위치 선정 밖에 한 것이 없다. 파이프 박을 위치를 앞뒤 좌우로 조금씩 이동해가면서 돌멩이가 없는 위치를 잡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해가 떨어질 무렵 어둡고 가는 햇빛이 나를 비추었고 다시 차가워진 바람이 휑한 땅에 파이프를 들고 애를 쓰고 있는 나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주말에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아내가 보고 싶어 졌다. 마음이 너무 지쳤나 보다. 기대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