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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Jan 10. 2020

야자나무 씨앗 찾아 삼만리

팜트리 씨앗이란 말야.

2009년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했으니까 7년 뒤의 일이다. 2016년 레인은 태국 그곳의 무더위를 즐기면서 수영장 가장자리에 있는 썬베드에 누워 책을 읽으며 뒤적이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휴가야. 이렇게 멋진 휴양지에서 말야” 바람에 흔들리는 갈아진 야자나무 잎사귀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눈을 괴롭혔다. 이따금씩 책 속의 이야기가 주는 상상의 간지럼을 못 참아서 몸을 이리저리 돌리곤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토리. 가벼운 바람을 느끼면서 대항해 시대 선상생활을 하는 선원들의 생활을 상상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카리브해를 항해하고 있던 그 선원들은 흰 모래톱 위에서 자라고 있던 코코넛 야자나무를 보면서 어떤 감탄을 했을까? 유럽의 끝자락 포르투갈에서 출발한 배 위에 있던 선원들은 에메랄드 빛깔의 열대 라쿤을 처음 봤을 것이고 시원하게 자라고 있던 큰 야자나무를 분명 처음 봤을 것이다. 그 선원들 중에 식물 덕후가 있었다면 씨앗 사냥꾼의 본능이 발동했을테다. 그 선원은 상륙해서 지휘관의 눈치를 보면서 씨앗을 주워 담는다고 무척 바빳겠지. 새하얀 눈이 내린 넓은 들판을 보게 되면 나의 발자국 만을 그리고 제일 처음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에 달려나가듯이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열대 어느 섬에 그들은 인간의 자취를 남기고 싶었을것이다. 선원들은 종종 요새건설에 동원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지휘관의 욕망이자 지시였겠지. 선원들은 육체적으로 힘들었겠지만 흰 라군 해변가를 돌아니면서 휴식을 취했을 법하다. 그 무리에 감성적인 선원이 있었다면 그곳의 풍경에 취해 그곳에 눌러앉아 평생 살고 싶었을테다. 그때부터 휴가는 강렬한 태양, 쭉쭉 뻗은 야자수가 몸속에 새겨져 이야기로 널리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내가 말야 항해하다가 카리브해의 해변가의 야자수라는 것을 봤는데 쉬기에는 딱이었어”.  리조트 내의 잘꾸며진 열대 정원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듯이 휴가에 야자수나무가 없으면 제대로 휴식을 못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레인은 마치 카리브해를 항해하는 배위의 씨앗 사냥꾼이 되어 있는 듯 했다.  대한민국에서 수천킬로 떨어진 곳까지 올 필요가 없이 집에 야자수나무가 있다면 그곳이 매일 휴가지겠지. 라고 생각도 했다. 홀리데이 파머스 라는 이름의 시작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레인의 마음에는 그때부터 욕망이 불탔으리라. 평생 야자나무를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잔뜩 바라본 적이 없었고 레인은 책 속의 선원과 같은 마음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야자나무를 길러봐야겠다. 하지만 야자나무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고민했을 것이다. 씨앗을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음..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려나? 지금까지 해외 구매라는 것을 한번도 안 해봤는데 해외에서 구매를 잘 할 수 있을까? 씨앗을 구하고 난 뒤 씨앗 발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저런 고민들이 레인의 머리 속을 돌아다녔다. 레인의 팜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팜트리를 재배해서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그래서 그는 야자나무 씨앗 사냥꾼이 되어야 했다. 야자 나무 씨앗이 익어서 땅으로 떨어지기만을 노리는 사냥꾼 말이다. 겐차야자, 여우꼬리야자, 코코넛야자, 크리스마스야자, 워싱턴야자, 리빙토니아, 리쿠알라 부채야자... 다 내 꺼야.


 야자수는 씨앗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껏해야 해바라기, 봉숭아, 나팔꽃 등 씨앗을 심어서 길러봤지 야자나무 씨앗은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하지? 막막하고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듯 했다. 해외 쇼핑몰을 검색해서 눈에 들어오는 야자나무를 찾았고 그 씨앗을 구매했다. 쇼핑몰 속의 야자나무 사진은 마치 이 씨앗을 구매해서 기르면 이 멋진 야자나무처럼 금새 자라 나에게 안겨줄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말그대로 환상이었다. 사람의 설레임과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것은 'NEW' 라는 새로움이다. 도착 해외 구매 물품의 배달 시간은 한국하고 너무 다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 긴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을까? 아무 문제 없이 잘 오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싼 것은 구매하지 못 하고 씨앗 10개짜리를 처음으로 구매했다. 결제를 해놓고 하루 빨리 우리집 우편통함에 와있기를 2주 정도 기다렸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마음을 졸이면서 회사 일을 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2주가 다 되었고 지금쯤이면 우편이 도착해야 할 텐데.. ‘세관에서 전화가 와서 검역 문제로 이 씨앗을 다시 되돌려 보내야 한다거나 씨앗을 소각 폐기해야 한다면 어쩌지’  핸드폰이 울릴 때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생전 처음으로 구매한 야자씨앗은 한국말로 여우꼬리야자 나무의 씨앗이다. 코코넛 야자 열매만 알았지 그것과 생김새가 매우 다른 씨앗을 마주하고 있으니 야자나무 농부가 된 느낌이었다. 복숭아 씨앗 크기 정도의 겉껍질이 새까맣고 오돌토돌한 무늬가 있었고 매우 딱딱했다. 함석가위로 잘라도 절대 쉽게 잘리지 않는 겉껍질이 감싸고 있었다. 씨앗에 대한 첫 인상은 좋았다. 씨앗이 그래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단단한 껍질을 뚫고 뿌리가 나온다고? 어디서 나올까? 어렸을 적에 아기가 엄마의 어디서 나오는지 곰곰이 생각했듯 야자 싹의 탄생에 대해 상상을 했다. 도무지 뚫고 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해바라기 씨앗처럼 씨앗이 크게 부풀어서 양쪽이 갈라지면서 떡잎과 씨앗이 갈라질려나? 여우꼬리야자 씨앗을 잡고 이러저리 돌려보았다. 결국에는 정답을 찾지 못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씨앗 발아의 첫 단계는 물에 씨앗을 불리는 것이다. 바가지에 물을 받고 씨앗을 넣자 씨앗 10개가 전부 가라앉았다. 좋은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씨앗이 둥둥 뜬다는 것은 안쪽이 비었다는 것이니까. 며칠을 물어 담가두었다가 화분 상토에 쿡 박아뒀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레인은 아파트에 산다. 그 말은 즉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없다는 뜻. 상식적으로 야자나무 씨앗이 발아가 되려면 뜨겁다 싶을 정도의 온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앗 정말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다. 하는 수 없이 씨앗이 콕 박힌 화분 채로 큰 투명 비닐로 감싸고 베란다 걸이대 위에 놓았다. 거기는 그나마 거실창 유리를 거치지 않고 해를 바로 받으니까 비닐 봉투 안쪽은 낮 동안은 찜통 더위겠지. 후후 그럼 뭐 이제 또 기다리는 일만 남은건가? 생소한 녀석. 어떻게 발아될지 지켜 봐야겠다. 2016년 7, 8월의 여름 무더위는 정말 대단했다. 그 대단함만큼 씨앗 발아는 시간문제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비닐봉투 안을 들추면서. 그런데 검은색이었던 씨앗 겉껍질에 녹색 이끼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끼 색이 진해지더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 망했어. 무더웠던 8월이 끝나가고 9월이 끝나갈 무렵 아침기온이 10도 정도까지 낮아지는데 발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해 첫 야자나무 씨앗 발아는 대대적인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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