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에 대한 고찰, yashica, canon, ricoh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지 않았다. 괜한 오기였다. 필름 카메라가 유행한지도 꽤 되었는데 그동안 현상과 스캔을 맡겨본 필름이 총 네 롤은 되려나. 사진 찍는 게 직업인 사람에게 이 정도 스코어는 매우 처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고해상도의 사진을 좋아한다. 컬러와 질감 표현이 우수하여 매우 실제와 같은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내 의도대로 완벽하게 잘 맞춰진 구도와 초점, 또렷한 윤곽선, 적절한 대비가 어우러지는 채도 낮은 사진을 사랑한다. 취향이 이렇다 보니 필름 카메라와 필름 사진에는 영 미(美)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보유한 필름 카메라가 몇 대 있긴 하다. 부모님이 사용하시던 국산 브랜드의 자동 필름 카메라와 친구가 사용해보라며 빌려준 일본 브랜드의 자동 필름 카메라, 거기다 내가 직접 구매했던 이중 합치식 필름 카메라까지.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무색할만큼 제법 많다.
국산 브랜드인 삼성 제품의 필름 카메라는 기대보다 결과물이 만족스러웠지만 촬영 도중 카메라가 멈춰버리는 일이 발생해 필름도 살리지 못하고 내 방 서랍 속에 처박혀있다. 친구가 사용해보라며 빌려준 캐논 사의 카메라는 바디가 가볍고 촬영이 쉬운 자동카메라였다. 스냅 용으로 적당한 카메라지만 선예도가 떨어져 결과물엔 아쉬움이 남았다. 야시카의 이중 합치식 필름 카메라는 가지고 있는 필름 카메라 중 가장 결과물이 마음에 드는 제품이었다. 이중 합치식이라 초점 맞추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지만 초점만 잘 맞으면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스냅 촬영용으로 가볍게 들고 다니기엔 다소 무거운 바디 중량과 비교적 까다로운 초점 방식이 촬영을 망설이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뜸 이실직고부터 하며 시작한 글인데 가지고 있는 필름 카메라를 줄줄이 나열한 것도 참 우습다. 어쨌든 과거의 내 취향과는 별개로 필름 카메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이유는 제법 단순한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결과물을 사랑하고(어쩌면 디지털카메라로 창조한 사진보다 더), 가볍게 들고 다닐만한 스냅 용 카메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재 필자가 보유한 작업용 카메라는 워낙 고가의 제품인 데다 바디와 렌즈까지 포함하면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스냅 촬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작업실에서 늘 조명과 배경지를 세팅하고 삼각대를 사용해 상업용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인지라 야외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일상을 촬영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그리하여 스냅용 카메라 구비를 고려하던 찰나, 이왕 이렇게 된 거 필름 카메라를 구매해 일상을 촬영하고, 이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자는 나름의 결론이 내려졌다.
필름 카메라도 워낙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선예도가 디지털카메라에 버금갈 만큼 훌륭하거나 유명 사진작가들이 사용하는 제품일 경우 백 단위를 훌쩍 넘기기 일쑤라 고르는 데 애를 좀 먹었다. 어쨌거나 필름 카메라에 2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고 싶지 않았고(아직도 약간의 오기를 부리는 중) 10만 원대의 가벼운 자동 필름 카메라를 구매하기 위해 수소문한 결과, 결과물이 비교적 만족스러웠던 리코의 AF-5라는 필름 카메라를 새로이 구매하게 되었다.
리코의 AF-5는 플래시가 카메라에 내장되어 있어 좋았다. 뷰 파인더를 통해 flash의 필요 유무와 초점 거리 영역을 보여주는 표시등이 발광하는 것 역시 장점이다. 제법 다정하고 세심한 카메라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은 추후에 업데이트 예정.
필자는 필름 카메라와 친해지는 과정 중에 있다. 취향이 아니어서, 혹은 오기로 미뤄두었던 필름 카메라와의 친목 도모를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도해보려 한다. 한 롤을 다 채워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쾌감과 어쩌다 눌린 셔터에 저도 모르게 터지는 탄식,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하며 현상과 스캔을 기다리는 하루하루 같은 것들. 현상과 스캔 과정을 거친 후 받아보게 된 사진들을 친구에게 전달할 때의 설렘과 그들의 반응이 주는 만족감 같은 것들. 이러한 필름 카메라만의 장점을 최선을 다해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고해상도의 사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가 촬영하는 필름 사진이라니. 나조차도 그것이 낯설지만 설레는 작업이 될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든다.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도 좋고, 사진을 찍는 나도 좋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도 좋고, 그들이 찍는 내 모습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함께 좋아할 사람을 찾는 일도 즐겁다. 어쨌거나 더욱더 다양한 사진을 보고, 찍고, 작업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사진을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들이 사랑하는 필름 사진을 나도 마음 다해 좋아해 볼 작정이고, 그리하여 그들과 더 많은 사진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