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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May 30. 2024

직장인의 마음(3)

바쁜 척하지 말 걸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진 친구들이 있다.

특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퇴근 후 만나 술 한잔 하기도 힘들고 벅차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만남을 미뤄오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어젯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문뜩 떠오르게 된 건, 잘 확인도 하지 않은 오래된 어플에서 알람이 와서였다.  구글 드라이브와 핸드폰 사진 연동이 되는지도 모르던 시절, 용량이 넘쳐버린 사진첩을 정리해야 했을 때 쓰던 어플이었다. 이걸 사용해 사진첩을 연결하면 사진을 압축해 저장해 주는 것이었는데,  미디어 음량이 오류를 일으켜 핸드폰을 끄고 다시 세팅하는 과정에서 켜졌던 모양이었다.



그 어플의 알람은 이랬다.



'압축에 실패한 사진을 확인하세요.'



그리고 그 어플 속에는  8년 전 2016년 7월 24일에 찍힌 사진이 있었다, 

친구와 1차로 치킨과 맥주로 한 바탕하고

2차로 어두컴컴한 지하 칵테일바를 찾아 진토닉 잔을 마시고 난 후의 사진

사진 안의 나는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런 거...







분주한 날의 아침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상사로부터 호출이 왔고,

써야 할 보고서 숫자가 1개 더 늘어났으며,

어제 보냈던 서류에서 미기입된 부분이 확인 돼 발주가 늦어졌다는 통보를 받아 짜증이 한 미터쯤 솟구쳐 올라 한숨을 쉴 때였다.


카톡이 왔다.

어제 나는 그 사진을 보자마자

그 문제의 장소에 같이 있었던 친구에게 카톡을 했더랬다.

그것도 '자니?'라는 미치도록 고전적이고 진부한 메시지를.

'그동안 잘 있었어'라든지

'뭐 하니'라는 평범한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녀와 나는 그런 말이 오히려 어색하고 어려운 관계였다. 초등, 중학, 고등 모든 학창 시절을 같이 했던 친구.

집안 사정, 연애 사정, 심지어 성적 등수까지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었다.

그런데 잘 지냈냐니, 뭐 했냐느니.

어우.

그냥 자니? 라며 장난스레 툭 하고 던지고 말지.


'지랄한다. 갑자기 ?'


역시. 그녀 다운 반응. 여전하구나. 내 친구.


너무 바빠 연락 못해 미안해

보고 싶었다

라는 워밍업 따윈 필요 없는 관계.


'너 이 사진 기억나냐?'

'아 ㅋㅋㅋㅋ 당연. 어떻게 잊어. 너 남자한테 차였다고 울고 짜고 한 날. 남자 이름이 뭐더라?'

'아 그래서 눈이 부었구나! 난 누구한테 맞은 줄.'

'맞긴. 그날 눈물 한 바가지 쏟고 그리고 내 옷에 토했지 너.'

'헐, 몰랐음. 왜 얘기 안 했어?'

'얘기해서 뭐 해. 실연의 상처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군 애한테.'


그러고도 우리 둘은 한참을 카톡으로 떠들었다.

일하는 틈틈이 나는

그녀에게 이모티콘을 보내고 맞장구를 치고 답을 했다.

그녀는 여전히 떠돌이 프리랜서 생활 중이었고, 최근에는 창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점점 대화의 티키타카가 느슨해질 때쯤 그녀가 툭 하고 메시지 하나를 던졌다.


'야 잘 됐다. 나 오늘 여의도 갈 일 있는데 잠깐 얼굴이나 볼까?'




'몇 시쯤?'

'한 세시쯤, '

'어.. 잠시만.'


먼저 보고 싶다고 한 것도 나였다.

먼저 메시지를 보낸 것도 나였다.

그래놓고 나는 고민했다. 볼까? 만나볼까? 잠깐인데 볼까?


그때쯤이면 거래처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누가 날 호출할 수도 있고

그때쯤이면 내가 한창 보고서를 쓸 시간일 거야.


직장인은 자신이 일에서 빠지거나 쉬기라도 하면

회사가 망해버리거나 일이 안될지도 모른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니까 소심하고 걱정 많은 직장인인 나는

잠시 얼굴 보자는 친구의 제안에 또독또독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 답장을 했다.


'아.. 그때는 좀 안 되겠다. 다음에 날 잡아서 술이나 먹자.'

'그래 그럼.'


다음이라고 했지만

또 이다음은 한 달 후가 될지 1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퇴근 후 전철 안에서

후회가 몰려왔다.

뭐가 그렇게 바빠서 아니 바쁜 척하느라 친구가 보자는 데 튕겼을까.


10분, 5분이라도

친구 얼굴 볼 걸. 잠깐이라도 봤으면 좋았을 걸.

보고 싶은데, 다시 보자고 할까. 아까 볼 걸 그랬네.

다음에는 진짜 만나서

세탁비나 갚을 겸 술이나 한 잔 사줘야지.

근데, 언제가 되려나.

이번 달은 이래서, 다음 달은 저래서 나도 친구도 바쁠 텐데.

아. 그냥 만날 걸.








후회를 하지 말고, 그걸 경험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말을 해야 한다.

'가져올 걸' 대신, '아, 이럴 때는 김치를 가져와야 하는구나', '아, 다음에 여행 갈 땐 따뜻한 옷을 챙겨야겠구나'하고 마음속으로 각인시키자. 그래야 그것이 실수나 후회로 남지 않고 다음에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 고명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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