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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Nov 05. 2024

리더의 매력(1)_비전을 말하는 리더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이 프로젝트를 길게 봐. 큰 그림을 그려야 해. 보고서 한 장으로 끝낼 일이 아니야.


그리고 이런 말도.


잘하고 있어. 대단해 너희들. 응원해. 뭐 필요한 거 없니?


이러한 그의 태도가 나에게 크게 와닿는 것은

바로 직전에 그의 자리에 있었던 리더와 너무도 결이 달라서였다.


그 전의 그를 A, 지금의 그를 B 해보자.


어떤 과제가 떨어졌을 때 A와 B의 대처 방식은 이랬다.


A: 이거 엑셀로 작업해서 한글로 붙인 다음에 보고서를 써. 그리고 보고서를 만들어. 결론은 '000'라고 쓰면 돼. 빨리. 내일은 내가 지역에 내려가야 해서 바쁘니까 오늘 중으로 끝내도록 해.


B: 결론이 어떻게 나올 거 같아? 한번 편하게 얘기해 보자. 그리고 내 생각도 말해 줄게. (중략) 그건 네 의견이 맞는 거 같아. 근거만 더 붙여서 한 번 만들어 보자. 보고 할 때는 나랑 같이 가도록 하고.


A 리더의 장점은 분명했다. 그의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했고 꼼꼼했다. 늘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부하 직원들은 그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이행하기면 하면 되었다.


B 리더는 정확히 그 반대다. 그에게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일 전체에 대한 책임과 목표만 있었다.


어떤 직원들은 B보다는 A를 더 편하게 느꼈다.

A의 지시가 불명확하고 두루뭉술하다는 이유였다.

B처럼 엑셀! 파워포인트! 결론! 이렇게 해줘야 좋고 일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A의 목표는 너무도 분명했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

상공으로 향하는 동아줄을 잡기 위해서는 그 줄을 내려 준 사람의 눈에 띌 기회가 필요했다.

그걸 만드는 것이 직원들의 일이었다.


B의 목표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달리는 도로에 있었지만

그의 목표는 위로 가는 길이 아닌 부하 직원들에게 향해 있었다.

직원들의 성장과 깨달음.

그들은 자기 직원들의 도태와 게으름과 무력함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늘 중간에 체크했다.

힘드니? 부족한 거 없니? 이해가 됐니? 잘 진행되고 있니?

채근이 아니라 누구 하나 도태되거나 뒤쳐질까 봐 고개를 빼고 뒤를 돌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B가 하는 말에 심장이 여러 번 뛰었다.

어느 날, B가 하는 말에 뛰던 심정이 착 하고 가라앉았다.


"해 봐. 책임은 내가 져. 망해도 돼. 욕먹어도 돼. 내가 다 막을게."


하기 싫은 일에 손이 갔다. 어렵고 까다로워서 그 간 뒷전으로 밀어뒀던 프로젝트 파일을 다시 꺼내고 싶어졌다.


나는 내가 아닌, 우리 팀, 조직을 위한 로드맵을 적기 시작했다. B에게 브리핑했다. B가 격려와 지지를 약속했다.


어느 날 밤, 버릇처럼 빨간 노트를 열어 B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이렇게 적었다.



000 의원_ 비전을 말하는 리더









국회에서 마주치는 리더들을 기록하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자 보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 뉴스로만 마주하는 국회의원들은 외부인들, 즉 독자나 시청자, 유권자들에게 늘 악인으로만 묘사되지만 사실 이들을 지근거리에서 보면 그 단어들만으로도 뭉뚱그릴 수 없는 매력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매력,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

매혹할 매 + 힘 력


그러니까 이들은 나름의 매력이 있었기에 쟁쟁한 경쟁자를 뚫고 소위 '배지'란 걸 달 수 있었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매력'이라는 단어에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자기 파괴적이고, 타인 소모적이고, 세상을 우롱하는,

매력과는 다른 일종의 '마력'을 새삼 체감하고 기록 중이다.


이 브런치는 그 기록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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