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MFA, 즉 예술학 석사는 새로운 MBA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이 기사에서는 선진적 글로벌 기업이 MBA에서 배우는 분석적이고 현실적인 스킬보다 미술계 대학원에서 배우는 통합적인 스킬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 사람을 끌어당기는 리더의 심리학, 박두진 -
서울의 한강 북쪽 지역에서 내리 2번이나 당선된 국회의원 C에게는 예술가적인 면모가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의원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나는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꼭 네이버에서 면담자의 이력들을 살펴보곤 했는데, 그는 완벽한 '이과적'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화학과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등이 그의 전공, 그가 국회를 오기 전 했던 일도 기술과학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의 외모 또한 매우 공학자스러워서 날카롭게 베일 듯한 그의 와이셔츠 깃과 먼지 한 톨 없는 그의 구두를 보면서 생각했더랬다.
'아, 정말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오겠다.'
방 입구에 서서 그의 취향대로 꾸며졌을 방을 떠올릴 때는 책상과 책장, 소파가 각이 잡혀있고
종이만 나부낀다는 어느 통계학자 출신의 방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방에 들어간 순간, 나는 가장 먼저 콧 속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방향제 냄새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노끼 냄새였다.
"냄새 좋죠? 우리 지역에서 공방 하시는 분이 선물로 가져오셨길래 써보고 있어요. 천연 제품으로 만들었다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방 소개.
그가 가리키는 벽 곳곳에는 붓터치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정체 모를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그가 안내한 소파 테이블에는 흡사 어린아이가 조물딱거리다 내버려 둔 찰흙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어? 이거.."
나는 딸아이가 요즘 빠져있는 클레이, 슬라임류의 장난감이라 생각하고 비슷한 답변을 기대했지만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뉴욕에 프리마켓에서 2달러 주고 산 거야. 아주 멋지게 턱수염을 기른 남자 애가 자기가 만들었다며 좌판을 열었더라고. 딱 본 순간 뭔가 영감이 떠올라 샀지."
그러고서도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갤러리 토크 프로그램에서양복 빼 입은 증권가직장인들이 많아 놀랐다는 둥 하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혹자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세비를 받으면서 외유성 출장이나 가는 것이냐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는 밤낮, 주말 없이 복지 법안 개정에 매진하여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너무 부지런해서 피곤한' 의원으로 소문이 나있을 정도였다. 이번 뉴욕 출장 또한 미국 국무성의 초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오늘의 방문도 정책에 관련 회의였다. 그는 그간 통과된 법안들과 관련 정책들을 살펴보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고 했다.
"이거 좀 그림이 될 거 같지 않아? 정책은 내실도 중요하지만 마케팅도 중요해. 잘 팔아야지. 누구한테 팔아볼까? 이 정책이 필요한 데는 서울이 아니라 공무원이많은 세종시일 거 같은데? 데이터뽑아봐. 내 말이 맞을걸?"
"그리고 이 건 다음에 해봅시다. 지금 타이밍에는 맞지 않는 거 같아."
그는 정책 홍보 방향 수정을 요구했다. 타당한 지적이었다.
정책을 홍보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를 체감하는 시민들은 매우 소수였다.
"그 정도면 신기(神氣) 아냐?"
사무실로 돌아와 회의 결과를 알려주니 김 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을 방문한 이후 나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신기보다는 촉, 직감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논리와 이성은 결국 타인과 ‘똑같은 정답’을 도출해 낸다. 하지만 우수한 의사결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초논리적이다. 초논리는 결국 '직관의 수준'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