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그리고 자연
"난 너에게 편지를 써
모든 걸 말하겠어"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자주 불렀었다. 나는 루시드폴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소라는 '좋아한다'는 표현보다는 동경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소라의 음악을 들으면 깊은 슬픔과 함께 마음 깊이 위로를 받게 된다. 몸과 마음이 아주 지쳤을 때, 오늘 하루가 왜인지 고단할 때, 오늘은 깊은 밤 TV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눈과 귀로 듣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중학교 2학년, 학교를 마치면 가장 친했던 친구와 영어학원에 갔었다. 거리가 꽤 멀어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간혹 친구의 아버지가 차로 데려다 주시곤 했다. 그때 처음 친구 아버지의 차 안에서 이소라의 ‘난 행복해’를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친구가 이소라 노래들을 테이프로 녹음해 선물로 주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이소라의 팬이셔서 친구 집에 이소라 앨범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클래식이니 팝송이니 뉴에이지니 하는 장르의 음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이소라의 프러포즈>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프로그램. 그 뒤로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금요일 밤 가족들은 모두 잠들고, 중학생이었던 나는 숨죽여 거실로 나와 TV를 틀었다. <이소라의 프러포즈>를 보려고. 이소라를 좋아했고,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음악 하는 사람들과 또 다양한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출연하여 대화를 나누며 노래 부르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27살 독립을 하고부터는 더 이상 숨죽이지 않고, 듣고 싶은 크기로 볼륨을 높여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그 순간은 너무도 행복했다.
곰곰이 생각하면 나의 경우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을 하는 쪽이 훨씬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언뜻 이 두 가지가 같은 게 아닐까? 할지 모르겠지만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좀 다르게 시작되는 것 같다. 좋아하는 건 마음이 즐겁고 약간의 셀렘을 동반하지만, 위로하는 건 마음을 차분하게 하여 나를 침잠하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 위로가 훨씬 더 강력하다.
내게 위로를 가져다주는 또 하나는 자연이다. 임신했을 때 입덧을 거의 10개월 가까이했었다. 하루 종일 뱃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바다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세원이를 낳고 나서도 여전히 바다가 좋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이소라의 음악을 듣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 해가 지고 난 바다의 짙은 바다색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역시 나를 침잠하게 한다. 또 세원이가 바다를 너무도 좋아해 주니 더 반갑다.
최근에 자주 느낀 것은 아이와 투닥거리다가도 같이 나가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푸른 나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화단에 피어난 작디작은 꽃들을 보고 있으면 큰 호흡을 하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늘 변함없는 자연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내가 이소라의 음악을 어떤 순간마다 찾아 들으며 동경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소라가 말했다. "사는 이유나 존재가치가 노래 말고는 없기에 노래를 대충 해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이어서 상대가 답한다. "누나는 목소리를 내서 그냥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고 노래가 자기야. 노래할 때 제일 괴로운 사람이 누나야."라고. 순간 그녀의 삶이 세상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삶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삶이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거의 전부일 그녀의 음악을 듣는 순간엔 나도 함께 어떤 기억들에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다시 수면 밖 일상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들이 멀리 있지 않아서, 다행히도 내 가까이에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편지를 쓴다. 모든 걸 다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