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허리를 구부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안 본 지 4년이 되었다. 오! 4년이라니! 쓰면서도 놀랍구나. 내 기억이 맞다면 2018년 여름이 마지막이다. 종로에 있는 씨네큐브는 지나고 보니 내 청춘의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씨네코드선재와 함께 공연장에서 볼 법한 의자에 앉아 그리 많지 않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영화 관람은 그 자체 만으로도 행복이었다. 송파에서 10여 년을 살았지만 서울에서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곳은 안국역에서 광화문역에 이르는 곳곳의 장소들- 정독도서관, 아트선재센터, 삼청동 가을단풍길, 광화문 교보문고, 덕수궁돌담길, 정동극장, 씨네큐브로 소소한 추억들이 내겐 많이도 있다. 아스라하다.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원제 Visages, Villages)>이다. 바르다와 제이알, 두 사람이 포토트럭을 타고 프랑스 시골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삶의 공간, 그리고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 영화가 너무 좋아 바르다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어렵게 어렵게 찾아보았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여러 영화들은 대중적이진 않지만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중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는 밀레의 명화 <이삭 줍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알 수 있듯, 무언가를 주워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확이 끝난 밭에 나뒹구는 감자를 줍거나, 마트 주변의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는데, 이 음식물이나 물건들은 여전히 쓸모가 있고 심지어 바로 먹어도 싱싱한 것들이었다.
3살 된 딸 세원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이 아이의 일상을 나도 모르게 구경할 때가 있다. 물론 엄마로서 해야만 하는 일들에 몰두할 때면 놓치는 순간들이 있을 테지만 정말이지 삶의 구석구석을 만끽하는 것 같다. 지루함과 심심함 마저도 그건 그것대로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노래 부르듯 '엄마'를 불러대며 (때마다 정말 엄마가 필요한 건지, 아니면 설거지하는 엄마가 당연히 자신에게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이유 없이 불러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뒹굴거리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산책을 할 때가 진실로 절정인데,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세원이도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거나 뭔가를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또 나를 동참시켜 같이 쭈그려 앉게 만든다. 나뭇가지나 잎이나 꽃들, 이름 모를 열매들, 개미, 지렁이, 동네 오빠들이 쏜 총알들, 과자봉지까지- 별 볼 일 없지만 아이에게는 나름의 즐거움이고 세상을 들여다보는 방식일 테니 내가 가진 아이의 영혼을 불러들여 기꺼이 허리를 굽히고 쭈그려 앉아 같이 재잘대며 놀게 된다.
'일상'은 나 스스로의 삶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소중한 부분이라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위로의 디자인>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문장이다.
좋은 열매를 보기 위해서는 그 식물을 가꾸고 돌보아야 한다.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맺히는 일이 기적과 경이에 속한다면, 물을 주고 햇빛을 쪼이고 잡초를 뽑아주는 일은 지난하고 일상적이다. 사람의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매일의 순간들은 원대한 소망과 시급한 목표에 묻혀버리기 쉽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오늘을
즐기라는 말들은 애저녁에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부한 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오늘의 생활을 돌보기란 여전히 까다로우며, 흔치 않다. 작은 무대에서 음악을 나누고 길거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문화를 향유하듯, 일상도 향유될 필요가 있다고. 매일의 평범한 저녁과 식사, 대화들을 애정으로 돌볼 필요가 있다고. 이 저녁에 거리 위의 간이 테이블에서 좋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면, 작은 무대에서 우쿨렐레를 들고 연주를 하기라도(듣기라도) 한다면, 멀리 가지 않고도, 많은 것을 이루지 않고도 삶을 누릴 수 있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될지도 모른다.
속초 동아서점의 김영건 대표는 최근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를 출간했는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Q. 서점을 운영하면서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요.
A. 원고를 10개쯤 썼을 때부터 벌써 막히기 시작했어요. 점심시간마다 아내랑 밥 먹을 때 더 이상 쓸 말이 없는 것 같다고 자주 푸념을 했습니다. 진짜 제 문제는 나의 경험의 한계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생활환경을 더 자세히 바라보려 하지 않고 외면하려고 했던, 다 안다고 치부했던 그런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저의 매일매일의 생활을 더 자세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겠다는 그런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속 일상을 아주 섬세하고 생생하게, 풍성하고 너그럽게 그려내며 보여준다. 그렇게 건넨 작품들은 드러내고 싶은 어떤 주제는 차치하고 섬세하게 관찰한 일상의 장면들이 훨씬 더 인상 깊고 위로를 건네었다. 내겐 늘 그렇게 다가와서 이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깊이 감동하지만 그마저 편안했다.
나는 내 하루하루가 진지하면서도 가볍고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의 하루가 섬세하고 따듯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를 통해 다시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 새로운 오늘을 내 바람대로 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좀 더 가벼운 옷차림과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내어보면서 기꺼이 허리를 구부려 일상을 주우러 다녀 볼 참이다. 그렇게 줍고 모은 것들이 우리에게 보석처럼 빛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