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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록 Jun 23. 2023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였기 때문에



  어제 열이 나 어린이집에 가지 못해 할머니네 집으로 온 조카는 축 늘어져 시원한 거실바닥을 뒹굴었다.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없는 조카가 갑자기 겨울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반짝이는 코~" 나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여름에 둘이 함께 루돌프 사슴코 노래를 열창하려는데 아는 부분만 도돌이표로 부르는 우리. 가사를 스트리밍으로 찾아보았다. 뭐든 핸드폰으로 하는거는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녀와 한 곡 시원하게 따라부르고 내친김에 유트브로 루돌프 노래를 보여주었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 길이 기억되리



  산타를 만나지 않더라도 반짝이는 코 신경쓰지 않고! 나의 장점으로 키워보겠어! 동요 가사를 곱씹게 되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짝꿍에게 말하니 "그 노래 어른들한테는 슬픈노래라던데" 랬다. 곰곰히 생각해본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 아니 나는 슬프지 않고 기회의 노래같던데?"



2.

  요즘 내 부스터는 '피쉬돔'이라는 게임이다. 뿌요뿌요같은 단조로운 고전 무료게임인데 처음에는 뭘 부수는 재미에 했다. 뭐 폭발하는게 속시원해서. 그런데 이게 계속 게임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있다. 레벨이 올라갈 수록 금화가 늘어나 수족관을 꾸밀 수도 있고 물고기를 살 수 있는데 이 요물 물고기들이 나에게 하는 말 때문이다. 내가 듣고 싶어하는 응원의 말들을 해준다는 데에 있다. 한번은 진짜로 울컥해서 캡쳐할 타이밍을 놓쳤었다. 이제 레벨이 너무 올라가서 한번에 깨부수지 못하고 몇 차례 시도하고도 미션을 성공하지 못하면 몇 분이 무조건 지나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전에만 하는 편...어쨌든 나는 주변의 작고 작은 일도 이렇게 새가 모이 쪼아먹듯 잘 받아먹으면서 살고 있다. 좋은 생각들, 힘나는 말들 찾아서 잘 주워먹으며 살고 있는 나


잘 지내나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뭔가 기운이 나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네요





3.

  엊그제 화실에 갔을 때는 갑자기 다음 그림을 엄청 큰 캔버스를 선택하게 되면서 젯소칠도 동시에 하고 시간이 없이 그림도 그려야 했고 나의 심란한 마음으로 (카페를 포기 못하느냐, 요식업을 택하느냐) 그 생각을 떨쳐내려 그림에 더 집중한 덕인지 사진 한장 건지지 못하고 그림을 두고 왔다. 그 날 선생님에게 사실 이런 저런 심란한 상황을 말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림이 감 디저트에 올인하려는 나의 마음, 또는 감 디저트를 포스터화 하는 스토리가 담긴 그림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아시니까. 수다를 조금씩 떨다가 근황을 말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이 "어휴 고민 엄청 되겠어요. 이렇게 그림도 그리면서 애정 담고 계셨는데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 그건 괜찮아요. 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그림이 소용이 없게 되더라도 소중한 애장품이 되는거겠죠." 했다. 선생님이 말했다. "와 긍정적이시네요!"


내가 긍정적이라는 말을 다 듣다니! 내 주변 사람들 함께 들어주겠어요? 하면서 녹음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나는 대체로 그런 사람인데. 뭐가 안되면, 아기가 안생기는걸, 마음이 긍정적이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라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정말 답답했었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세상 긍정 파워로 삶을 운전하며 살길래?라는 반박을 하고 싶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근 몇년 만에 제일 듣고 싶던 말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날 하루 컨디션이나 불안감으로는 시궁창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202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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