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혼자 고요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파스칼
곽정은 님 유튜브 아래 편을 우연히 보게되면서 알게 된 말이다. 곽정은은 파스칼의 저 말을 좋아하는데 이 말의 내용은 자기가 살면서 정말로 조용히 침묵 속에서 성찰하고 고민할 수 있는 그 마음의 에너지가 있는가 라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채로 인생의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자기 이성으로 파악할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말이지 않겠냐고 설명한다.
또 '대화 중독'에 대해서 지적한다. 뭔가를 할까 말까에 대해서 주변이든 인터넷이든 묻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기본적으로 혼자 뭔가를 결정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청인다고. 계속해서 연애하지 않으면 그 상태를 못 견디는 그러는 것도 '관계 중독'일거고 등등.. 생의 주기별로 계속해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꼬이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분석했다.
2년 전쯤에 파한 모임이 떠올랐다. 여자 다섯이 모인 모임이 있었는데 난 이 다섯 여자 중에 연장자였고 가장 먼저 결혼 했는데 이후에 결혼한 친구들이 속속 아기를 낳았고 그 과정에서 나보다 어린 친구가 아이는 빨리 낳아야 이득이고, 자기는 둘째도 빨리 낳아서 얼른 키우고 하고 싶은 일을 다시 할 거라고 말하곤 했다. 이 모임에는 결혼 아직 안한 나와 동갑인 친구도 있었는데 우리는 서로의 생의 주기를 공격하는 말로 해석했고 기타 등등의 이유와 감정싸움으로 결국 곗돈도 정산하여 모임이 깨졌다. 이 모임에는 각자의 특징이 있는데 원치 않는 시기에 아기가 생겨서 육아로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다. 애 갖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부럽다고도 말했을 정도였다. 이런 다양한 여자들의 삶이 곽정은 유투브를 보면서 뇌리를 스쳤다. 나도 아무래도 이 시기에 아이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에서 시작한 불안이 유산으로, 이 과정에 끝이 없으면 어떡하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이 상황에 갇혀버린 느낌으로 살아왔다.
결혼 7년차 삼십대 중반. 난임.. 이 빛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얻은 적이 많은데 이번 과정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원하는 게 이렇게 안되는 이유가 있나? 이 불운 속에서 행운이라고 생각할 부분은 단 한개도 없을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기분과 생각 탓에 이런 긍정의 신호탄은 적어놔야 다음날의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열심히 적어뒀었다. (언제 생각이 또 뒤집힐지 모르겠기도 해서..)
그래서 행운일 부분이라고 여겼던 것이 바로 '혼자 있는 시간', '자체적으로 고립을 선택한 시간'이 되려 특혜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내 생각을 알고리즘이 읽었나? 마침 기가 막히게 곽정은의 유투브가 우연히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염색체 문제 없는 배아로 선별하는 pgt 작업을 했음에도 유산을 했던 이유는 바로 '고사난자'였기 때문이다. 아기집은 커지지만 아기는 나타나지않는 배아는 고비용, 고도의 기술인 pgt작업으로도 분류할 수 없었다. 나의 유산은 같은 패턴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원인 불명의 유산에 가까우면서도 습관성 유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차수가 되었다.
역시나 나는 이번에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또 심한 타격을 입었고 자발적 고립에 크나큰 명분이 생겼다. 유산을 할 수도 있으니 기쁨도 불안과 함께 했던 약 7주간의 기간동안 다시 임신이 종결되더라도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미션을 줬다. 힘이 생길 때마다 노트에 손으로 적었다. 그런데 그 자존감이라는 걸 생각하면 난임과 엮인 나의 생의 주기를 뛰어 넘어야 하고, 기혼인 나의 상태를 뛰어 넘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병원을 다니면서 임신을 시도하면서도 이 생의 주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방법을 찾아보자... 적어둔거다. 사실 뭘 해서 나를 찾는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와 아닌상태의 구분. 기왕이면 열어둔 활동가의 에너지에 근접한 기운?을 알아 차리고 잊지않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까지 몇년간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카오스 그 자체였...)
이런 변화의 시도가 많이 위로가 됐다. 이번에 또 실패여도 나는 나일 수 있을거라는 믿음 같은 거. 문득 이 생각을 이끌어내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그래서 내 인생에 필연적으로 이 슬픔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쓸모 있는 어둠이네.. 그런 생각까지 다달았다. 자존감에 대한 의지가 너무 소중하고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앞으로 생의 주기에 갇히지 말고 내가 나로 어떻게 살 것인지 더 고민하기. 아직 나에겐 시간이 있다.
2021.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