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뜰 무렵 부지런히 요가를 다녀와 건강쥬스를 갈아 마시고 호기롭고 경쾌하게 무언가로 채우는 일상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해가 쨍쨍한데도 해가 지는 것이 두렵다. 저녁이 되면 어떤 식으로 우울감이 등장할지 모르고, 하나에만 집중하기 어려워 백색소음 고양이 영상을 보는 둥 마는 둥 멍때리며 잠이 오길 기다리게 된다.
절대적 악조건 상황이지만 나의 의지와 행동력은 상담선생님에게 너무나 대견한 것들이어서 마치 내가 뭐라도 된 사람 처럼 느껴졌다. 상담선생님은 오늘 나를 엄청 칭찬했다.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는 것, 요가에 가는 것, 무언가를 하려고 계획하는 것, 실행하는 것이 다만 허황된 것인지 임시방편인 것인지 신기루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상담선생님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 머리를 굴린다는 것, 다음 병원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희망의 씨앗들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한 달 내로 상담을 종료할 것 같다.
우울의 시초가 되는 생각에 대한 반박을 스스로 어떻게 했는가. 그런 경우에 어떻게 다르게 반박할 수 있을까요. 라며 고착된 절망에 환기를 주려고 했지만 대개는 말문이 막혔다. 이야기를 통해서 사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공장형 병원'이라는 별명에도 개의치 않고 장점만 보았던 사람이었고 이번에 주사를 하루에 한번만 넣는 것을 잘못해 매일 2회씩 맞다가 1회로 알아차린 것도 '잘못되면?'이라는 불안보다 '아싸 하루에 1대로 줄었다!'하며 좋아했던 나름 낙천적이었던 사람이었다는걸 알게됐다. 어떤 생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경중이 바뀌지만 그 선택이 정답은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나라는 사람은 상황을 조금은 뒤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보통의 사람은 겪지 않는 일들로 인해 무수히 많은 생각의 전환을 연습하고 있다고. 또한 보통 사람은 갖기 어려운 인내의 힘을 기르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럼에도 이 긴 인고에 끝은 있어야 한다고, 우리 부부에게 쉼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나름 일찍 병원을 다니게 됨에 안도했었다. 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실패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시간은 막을 수 없고 그 때가 되면 포기하라고 하면 더 서러울 것은 어떤 긍정왕이 와도 어려울 것 같다. 기준을 잡아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 끝은 서글픔이다.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는 몇 년 간의 노력의 시간이 억울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공포스럽다.
오늘 상담의 시작은 '감정 기복의 차이가 크고 잦다' 였다.
2022.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