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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록 Jul 26. 2023

윈터링


   몇년 전부터 이미 곪았다고 생각했던 생채기정신적 충격이 이렇게 더 깊어질 줄은 몰랐어서 상처의 정도를 가늠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번엔 이보다 더 힘들진 않을 거야'라며 힘내려는 의지가 꺾이길 몇번이었는가. 내 주변은 나와 상황이 모두가 정반대였기 때문에 난 더욱 고립되길 희망했다. 사유가 분명한 나의 괴로움을 보며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안도할 수 있겠다는 상상이 들 때가 있다. 미움과 질투가 엉겨붙은 스트레스의 결정체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어떻게 반박해야하나. 그것이 문제다. 한동안은 이 정도로 생각하며 살지 않았는데 시기가 그래서 그런가?  요즘은 악몽이 끊이질 않는다. 철저히 나의 심리가 반영된 아픈 꿈들이다. 원래의 내 관계망을 모두 접어두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외면하고 다른 곳에 눈을 두려고 하는데도 자꾸 꿈에 보인다. 벗어나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겨울을 겪는다. 어떤 이들은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한다. 윈터링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이 시기는 질병으로 인해 찾아올 수도 있고, 사별이나 아이의 출생과 같은 큰 사건으로 인해 찾아올 수도 있고, 또는 치욕이나 실패로 인해 찾아올 수도 있다.
어떤 겨울은 우리에게 아주 천천히 살금살금 다가오는데, 질질 끌어온 인간관계의 종결, 부모님이 나이 듦에 따라 점진적으로 늘어난 돌봄의 부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줄어드는 확신 따위와 함께 온다. 또 어떤 겨울은 몸서리치도록 갑작스럽게 온다. 하루아침에 당신의 기술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취급 받는 걸 깨닫게 되거나, 근무해 온 회사가 파산하거나, 당신의 파트너가 새로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경우처럼, 어떤 식으로 찾아오든, 윈터링은 보통 자발적이고, 외롭고, 극도로 고통스럽다.
윈터링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언제나 여름만 계속되는 인생도 있는데 우리만 그런 인생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영원히 태양 가까이 있는 적도의 보금자리와 끝없이 계속되는 불편의 전성기를 꿈꾼다. 그러나 삶이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침울하고 어두운 겨울날, 급격한 기온의 저하, 그리고 명암의 교차에 취약하다. 엄청난 자기 절제에다 행운까지 따른 덕분에 평생토록 건강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겨울을 피해갈 수는 없다. 부모님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고, 친구들은 사소하게나마 우리를 배신하기 마련이며,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 역시 우리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넘어지게 되고, 그렇게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겨울이 오는 것을 부정한다. 우울을 말하면 모두가 외면하고, 항상 전진하는 자세가 대우받는다. 그러나 때로는 후퇴가 필요하다고,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가 있으며, 따뜻한 여름이 가치 있는 만큼 추운 겨울도 그 쓸모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겨울은 혹독하지만 우리에게 뜻밖의 이로움을 주는 계절이며, 그렇기에 바로 윈터링이 의미 있는 행위라고 한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캐서린 메이



  우연히 팔로우한 사람을 통해 보게 된 글이다. 너무 길어서 인용구인 줄 모르고 그 사람이 쓴 글인 줄 알고 너무 놀랐다. 모른척 뒤돌아 버리려는 나의 옷깃을 낚아 채는 듯 한 글이었다. 윈터링. 윈터링. 내 인생의 계절이 겨울이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 좋은 정의가 없다.



202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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