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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Oct 31. 2020

맨몸으로 생각하기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과학은

맨-이란 접두사

맨-은 ‘다른 것이 없는’을 뜻하는 접두사이지요. 맨땅에 헤딩, 맨발의 청춘이라는 말처럼, 맨-이란 말에는 언제나 약간 굴욕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얼마나 가진 게 없으면 맨몸으로 사느냐,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맨손으로 하느냐, 하는 안타까움과 시대에 뒤처짐, 아직 덜 완성된, 불쌍함 등이 정서로 깔려 있어요.

저는 수련하고 수업하면 사계절이 맨발일 때가 많습니다. 옷은 또 어떤가요. 요가 선생님은 언제나 헐벗고(!) 있잖아요. 맨몸, 맨발, 맨손으로 몸을 늘리고 숨 쉽니다. 맨발, 맨손, 맨몸, 맨눈……. 기초화장조차 하지 않고 맨얼굴로 산 지도 수년째입니다.

심지어 요기들이 정화의 활동으로 하는 네티(위장 정화)나 단식도 기계 없이, 오직 맨몸으로 니다. 맨몸의 감각을 깨워서, 자가 치유하며 살자. 이런 태도는 현대 의학계의 화려한 흐름과 반대 같습니다.


알파고를 만든 하사비스사가 내놓은 차세대 인공지능이 ‘딥마인드 헬스’예요. 딥마인드 헬스는 기계가 수집한 의료 데이터로 의사 대신 몸속의 병을 찾아주어요. 이미 앱으로 개인의 건강 데이터를 제공받고, 이를 분석해서 건강 상황을 예측해주는 실시간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똥의 성분을 분석해서 몸의 구성 성분을 브리핑해주는 변기도 있다고 하죠. 또 혈관을 돌아다니며 뇌졸중 위험도를 알려주는 칩 시술있습니다. 패치를 붙이면 장기들의 위험한 움직임을 감지해서 데이터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내 몸에 주의를 별로 기울이지 않아도, 이제는 눈 밝은 기계와 오차 적은 데이터 분석의 힘을 얼마든지 빌릴 수 있습니다.

21세기 진시 황들

우리 몸 자체가 비록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과학기술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잖아요. 뇌과학자 이케카야 유지 박사는 인간의 몸과 진화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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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이제 자기 몸이 아니라 ‘환경’을 진화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환경이 변화하면 그에 맞추어 동물 스스로 변해 왔다. 하지만 현대 인간은 유전자적인 진화를 멈추고, 역으로 환경을 지배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맞도록 바꾸고 있다.

"


유전적 진화 대신에 우리 시대는 유전적 한계를 도와줄 기계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기억력을 높이기보다 데이터를 보관하는 장치를 발명하는 것처럼, 자기 몸에 대한 감지력, 자각력도 이제 아웃소싱할 수 있어요. 매우 든든한 소식이지만, 어쩐지 의문이 들기도 하죠.


"

그렇다면 몸은 기계를 벗으면,

그런 환경에 접속하지 못하면,

우리 몸은 그냥 원시적인 몸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


바이러스 하나에도 지구의 온 사람들의 일상이 뒤흔들렸잖아요.

통계로 보면 한 가족에 한 명은 암 진단을 받아요.

그렇기에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실은 우린 그저 맨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신경 끄고 내 몸을 그저

좋은 기계와 인공지능과 데이터, 약물과 시술, 유전자 검사에 맡기면 되는 걸까?

맨몸을 비틀면서 질문해봅니다.

나 자신을 위한 과학은 과연 어느 쪽인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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