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엄마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막 웃었던 적이 있어요. 너무 똑같아서 어쩜 저렇게 유전의 힘이 강할까 하고 놀라면서 손뼉을 쳤지요. 그때 외할머니가 여든 살 즈음이었고, 엄마는 오십대 후반 정도였어요.
부모와 자식은 나이 들수록 닮아간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얼굴 생김새나 체형만이 아니라 걸음걸이에서 피의 무서움(!)을 느끼곤 합니다.
걷는 자세를 보면 삶의 태도가 드러나요. 자세는 영어로 포스처(posture)죠. 포스처는 태도라는 뜻도 있어요. 나의 자세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인 셈이에요.
자세 중에서도 걷는 자세를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잘 보여요. 걸음걸이는 체형과 자세가 어느 정도 결정하는데, 그 조건은 타고나니까 특별히 연습해서 고쳐가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가지요.
태도와 걷기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 보안 검사로 걷는 자세를 분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지문이나 홍채 인식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절대 조작할 수 없는 요소로 ‘걷는 자세’가 나옵니다.
세상사람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걷는 자세가 있고, 어쩌면 대부분이 어린 시절 걷는 자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유전자가 다시 새로운 집에 담겨 또다시 순환을 시작하니까요. 어쩌면 한 사람의 삶도 시간의 흐름은 일직선이 아닌 동그라미일지도 몰라요. 하루의 시간은 아침에서 밤으로, 다시 아침으로 둥글게 돕니다. 1년이란 시간도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겨울로 둥글게 돌며 순환하죠.
순환하는 몸
이걸 인생사에도 적용해보아도 그래요. 아기로 시작한 삶은 한 바퀴를 돌아서 노인이 되잖아요. 노인이 되어갈수록 어릴 때와 자세가 비슷해져요. 걷는 자세도 무릎이 벌어지고 아장아장 걷게 되죠. 걷기만이 아니겠지요.
나중에는 그 옛날 아기 때처럼 숟가락 드는 법을 새로 배우고 기저귀를 차게 되니까요. 그러다가 정말로 아기처럼 누워 있게 되고, 돌아갑니다. ‘죽는다.’가 아니라 ‘돌아간다.’는 참 아름다운 표현이 아닌가요.
삶의 시간은 일직선인가요, 동그라미인가요?
‘나에게 몸이 있구나.’
‘이 친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구나.’
이걸 느낀다면 이때 잠깐 시간의 동그라미를 만져보는 겁니다. 일직선으로 내달린다고 생각하는 건 머리의 일이죠. ‘몸’이라는 변수와 함께 돌면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면 동그라미를 만져보아야 하죠. 몸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 동그라미 시간 속의 나, 지금 어느 시간 속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