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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Mar 10. 2020

어느 만삭 임산부의 잠 못 이루는 밤

10개월, 37주 3일(D-18)

임신을 하고 나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이제 곧 임신을 졸업할 시점이 된 지금 나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나는 무엇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었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과 마음이 낯설고 당혹스럽다. 원치 않는 변화로 인하여 스스로, 그리고 주변과 겪는 갈등 상황 또한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고작 이 정도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고작 이 정도로 감정이 널을 뛰는 정신상태가 된다는 게 혼란스럽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요즘 부쩍 잠이 쉽게 들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잠들면 중간에 꼭 깨어버려 결국 하루의 시작이 엉망진창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렇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에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간밤과 아침의 몽롱함을 이기기도 어렵다. 결국 남들과 달라진 생활 패턴으로 허무하게 시간을 넘기고, 그 와중에 사소한 마음의 거스러미라도 일면 마음 한편을 쿡쿡 찔러대며 결국 눈물이 쏟아지게 만든다.


최근 훑어본 어느 유튜브에서 이런 건 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었었다. 임신 전에도 기가 막히게 생리 시작 며칠 전부터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패턴이 있던지라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깨달음은 보통 상황이 진행 중일 때가 아닌 지나간 뒤 원인을 곰곰이 떠올릴 때 효력을 발휘한다. 지금처럼 새벽 4시, 잠도 달아나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어려운 상태에서는 약빨이 잘 들진 않는다.


책장의 책을 몇 권 꺼내 들어 훑어도 잘 먹히지 않아서 그냥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 보고 싶어 작은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 투닥투닥 속을 풀어본다. 눈부신 전등 빛에 눈을 비비다 가리고 잠든 고양이의 이마도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내려본다. 조용한 거실에서 홀로 앉아 심호흡도 해본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억지로 눈을 감고 잠들려 애쓸 때보다는 당혹스러운 먹먹함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이것이 호르몬 때문이든 아니든, 어쨌든 갑자기 나를 치고 들어온 이 우울감을 평상시처럼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며 피하는 것보다, 가끔은 이렇게 가라앉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꽤 나쁘지 않다.


불면에 시달리는 우울한 임산부는 썩 유쾌하진 않은 키워드지만 그래도 이런 시간들 또한 나를 스쳐 지나갔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잠들고 눈을 뜬 내가 이 글을 보면 '역시 호르몬 때문이었다'라고 깨달음을 얻으며 피식피식 웃고 있기를 바란다.



덧. 그저 잠든 모습 하나로 모든 밥값을 다 해내는 고양이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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