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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tude May 13. 2023

새벽 2시의 독서모임

북티크 심야독서

2023년 2월 25일


오후 8시

불과 1주일 만에 다시 왔다. 처음 방문했을 때의 설렘과 낯섦은 없었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부터 정겹고 친숙한 느낌이었다. 이미 와서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이 계셨고, 오른편에서 책반장(책방주인)님이 날 맞이하셨다. 1주일 전에 본 얼굴을 기억 못 할 정도로 여기 유동인구가 많은지 싶지만 여하튼 서운하지는 않을 정도로 처음 뵙는 분위기다.

자리에 앉자마자 인스타에 책들이 놓인 사진을 올린다. 곧 나에게 있어서 누구나 인스타에 올리는 류의 베스트샷의 순간을 만날 예정이었으니까.


9시

만남의 시간이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이번 심야독서모임을 찾은 계기를 이야기했다. 아마 서로에 대해 알기 전 이미 이렇게 밤을 새워 책을 읽으려고 심지어 같은 공간에 왔다는 점에서 충분한 연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10시

각자 가져온 책을 각자의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가사 없는 적절한 템포의 음악과 책반장님이 음료를 만드시는 asmr만이 들렸다. 나는 flow에 들어갔다. 이렇게 온전히 집중해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11시

잠시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고 돌아오니 아까 들리지 않았던 다른 금속음이 울리면서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소리뿐 아니라 오감을 환기하는 냄새의 정체는 구워진 크로플이었다. 마침 출출해진 배를 시나몬 향의 크로플로 채웠다. 아마 이 시간에 집에 있었다면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크로플보다 더 살찌는 탄수화물을 먹으면서.


익일 0시 반쯤

슬슬 눈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잠시 일어나서 책방에 진열된 책들을 하나씩 펼쳐본다. 보통 책방에는 책방지기만의 취향이나 안목이 반영된 책들이 꽂혀있다. 어떤 취향, 동기로 이 책을 두었을까 생각하며 서점을 돌아다녔다면 미처 모르고 지나쳤을 책들을 많이 만났다.

익일 2시

독서를 시작한 지 어느덧 4시간이나 지았다. 처음 모였던 테이블에서 4시간 동안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마치 주말 오전에 만난 것처럼 책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새벽 2시의 독서모임이라니. 방 빌리거나 24시간 카페에서 올나잇 독서모임을 꿈꾸던 나한테 좋은 현실 자각의 시간이었다.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드는 이성과 별개로 입과 귀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익일 5시 30분

모임이 마무리되고 나니 첫 차를 타서야 침대만이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잠들면 여느 사람들처럼 일요일에 늦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말 나름 성실히 보낸 나에게,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충분히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매달 갖고 싶은 행복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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