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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비즈 Apr 19. 2022

늦잠 잤다고 가족에게 성질을 내버렸어요

최 대리의 이야기

“일어나, 늦겠어! 벌써 7시 10분이야!”

아내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뭐라고? 왜 이제 깨워! 미쳤어!”


“미쳤냐고? 30분째 깨우고 있잖아! 아기 안고 달래면서, 당신 아침밥 차리면서, 종종걸음으로 내가 침대에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 줄 알아?”


아내의 목소리 볼륨과 톤을 봤을 때 최 대리는 빨리 꼬리를 내려야 했다. 이유 여하를 따질 것도 없이 ‘미쳤냐’는 말은 큰 잘못이다. 그렇지만 갑자기 100% 반성 모드로 바꿀 순 없고, 우선 목소리 톤을 최대한 불쌍하게 느껴지도록 고쳤다.


“요즘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 이럴 땐 출퇴근 왕복 3시간 10분이 정말 지옥 같아. 마을버스 잡으러 뛰어야지, 지하철 갈아타면 숨도 못 쉴 정도로 답답하지. 출근도 하기 전부터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된다고. 너무 힘들어.”




턱없이 올라버린 아파트값에 부부는 일찌감치 서울을 포기했다. 신도시에 신혼집을 잡고 서울 입성을 다시 노리자, 매달 적금은 얼마씩하고, 부모님들 용돈은 당분간 양해를 구하고, 주말엔 좋은 아파트 매물이 나오면 보러 다니자고 의기투합했다. 늘어난 출퇴근 시간은 자기계발 시간으로 쓰면 오히려 더 좋지 않겠냐고 최 대리가 먼저 당당하게 약속했다. 그랬었다.


최 대리의 변명에도 아내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아내는 부르르 떨면서 얼굴을 감싸고 털썩 주저앉았다. 앉으면서 손에 있던 주걱도 바닥에 던졌다.


“매번 내가 잘못했대. 오늘은 미쳤냐고 소리지르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아침마다 이게 뭐야?” 


결국 아내가 운다. 서럽게.

이 와중에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미쳤는지 최 대리는 순간적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이미 늦은 일이다. 최 대리는 생각했다.


‘아, 조금만 참을걸. 조금만 일찍 일어날걸.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무슨 부귀영화를 본다고 이 고생이람. 근데 지각하면 어쩌지?’


어이없게 최 대리는 이 상황에서도 지각이 걱정됐다. 최 대리는 비록 육체는 출근하지만 자신의 영혼은 집에 남아 아내를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런 상황에서 허겁지겁 출근하는 것도 결국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거참, 그만 좀 밀어요!”

아저씨 뒤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소리를 지르신다.

“내가 밀고 싶어서 밀어요? 막 밀고 들어오니까 나도 할 수 없이 밀린 거잖아요!”


다음 정거장 문이 열린다. 내렸다 다시 탄다. 내리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타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 승차를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며 한 걸음씩 전진하다가 내가 탈 순서에 몸을 싹 돌린다. 엉덩이로 밀고 들어가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살살 민다. 어림없다. 밀어붙인다. 조금씩 가능성이 보인다. 몸 전체가 가까스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가방이 낄까 봐 고개를 숙이고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본다. 가방은 안전하다. 다행이다.


어라? 숙였던 머리를 들 수가 없다.

머리카락이 지하철 문에 제대로 끼인 탓이다. 지하철은 덜컹이며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지옥과 관계가 깊다. 우선 나라의 별명은 ‘헬조선’이다. 그리고 헬조선 사람들은 지하철을 ‘지옥철’이라고 부른다. 문득 이 숨막히는 지옥철 한가운데에서 최 대리는 오늘 아침 집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을 떠올렸다.


최 대리는 생각이 깊어졌다. 간신히 올라탄 지하철은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 이 많은 이웃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 걸까? 울고 있는 아내를 남겨둔 채 미친 듯 달려 출근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그는 나에게 묻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리느냐고.


최 대리는 갈아탄 지하철 한쪽 구석에 박혀 어제 산 카프카의 《변신》을 가방에서 꺼냈다.


나는 왜 이런 고된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날이면 날마다 여행이라니. (…) 기차 접속에 대한 걱정, 불규칙적이고 질 나쁜 식사, 자꾸 바뀌어서 지속되지도, 정들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 악마나 와서 다 쓸어가라지!

- <변신> 중에서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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