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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비즈 Apr 21. 2022

회사 부품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차 대리의 이야기

기계처럼 돌아가는 회사에서 부품처럼 일하다 보면 이런 질문이 목에 딱 걸릴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원래 이런 질문에는 답도 없고 괜히 사람만 우울하게 만드는 법이라며 애써 외면할수록, 질문 들은 더 뾰족하게 마음을 찔렀다. 아무리 헛기침을 하고, 밥 한 숟가락을 꿀꺽 삼켜도, 급기야 손가락을 목구멍 깊이 쑤셔 넣어 구역질까지 해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못된 생선뼈처럼 말이다.


차 대리는 입사 만 3년이 되던 2017년의 일기를 읽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거늘, 차 대리는 풍월은 고사하고 사표만 읊고 있다. 사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와 같은 궁극의 질문들에는 답이 없다. 깨달음이 잠깐 왔다가도 모르겠고, 어찌어찌 넘겼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괴롭혔다. 일의 의미를 찾고 가족과 이웃을 떠올리며 에두르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답답하고 불안했다.



차 대리는 내친김에 2019년 일기도 찾아 읽었다. 입사 5년이 지났으니 내용이 좀 변하지 않았을까 해서였다.


차라리 벌레였다면! 내 존재의 의미 따윈 찾지 않을 텐데. 아무 생각 없이 음식 부스러기를 찾아 많은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살았을 텐데. 그 성실에 감탄하며 스스로 대견할 터인데. 왜 인간으로 태어나 자꾸 나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그 의미를 찾도록 추궁 받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벌레로 죽긴 싫다. 가족들마저 등 돌리고, 빗자루에 쓸려 버려진 존재가 된다면 정말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나.


3년, 5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내용으로 종이를 낭비하고 있었다. 하긴, 2022년 일기를 쓴다고 해도 다르게 쓸 자신이 차 대리에겐 없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반반 섞은 듯한 표정으로 차 대리는 오늘도 출근 버스에 올라탔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빈자리가 있었다. 냅다 몸을 날려 자리를 차지했으나 앉자마자 옆에 있던 학생에게 굽신거리며 사과해야 했다. 차 대리의 핸드백이 퍽 소리를 내며 학생의 뺨을 갈긴 것이다.


“어떡해요, 정말 미안합니다. 괜찮으세요?”

차 대리는 허둥지둥 학생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닥에 떨어진 책에서 먼지를 털어내며 학생에게 건네주었다. 책 이름은 《데미안》이었다.



차 대리는 회사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학생의 벌건 뺨이 떠오르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중생이라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왜 그렇게 덤벙댈까, 좀 차분하게 행동하지, 32살이나 먹고 아침부터 이게 웬 망신이람.’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에게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었다.


책장에 엎드려 신세 비관을 하다, 학생에게 주워 준 《데미안》이 떠올랐다. 데미안이라, 나도 언젠가 읽었던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었더라? 퇴근 후 차 대리는 곧장 동네 서점으로 가 선 채로 《데미안》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진심으로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대로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데미안> 중에서


나답게 사는 건 나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닌가 보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자서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문학과 철학 그리고 불교에 조예가 깊었던 헤세. 그 역시 나답게 산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차 대리는 왠지 다행처럼 느껴졌다.


삶이란 자신의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 지금껏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으면서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 <데미안> 중에서


인간은 왜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쓰는 걸까? 그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다면 사실 진정한 자아 따윈 없는 것이 아닐까? 결승선 없는 이 달리기는 언제쯤 멈추는 것일까?



- 이 글은 책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에서 발췌했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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