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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비즈 Mar 29. 2023

경주 '최부자댁' 가훈에서 발견한 삶의 자세

400년을 이어온 만석꾼 가문

경주 황룡사지에서 삼십 분 정도 가볍게 걸으면, 교촌마을이 나타난다. 교촌마을은 내물왕릉, 월정교, 향교 등등 볼거리로 가득한데, 그중 압권은 단연 경주 최부자댁 고택이다.

출처_ 경주문화관광(gyeongju.go.kr)

최부자댁은 재산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부자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 가문이다. 발길을 재촉해 고택을 이곳저곳 누비다 보면, 한편으로는 쌀을 쌓아놓았던 창고의 크기에 압도당하고, 동시에 위엄 있게 뻗은 처마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건축물의 기품보다 황홀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그 집 가훈이다.


첫째, 과거는 보되, 진사(進士) 이상의 벼슬은 하지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萬石) 이상 늘리지 마라.
셋째,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논밭을 사들이지 마라.
다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하라.
여섯째, 며느리가 시집오면, 삼 년간 무명옷을 입혀라.



'최부자댁' 가훈에서 발견한 부자의 자세

부자 삼 대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최부자댁은 무려 열 세대에 걸쳐 가문의 부를 굳건하게 유지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가보다도 백 년이나 오랫동안 가문의 위세를 지켜낸 것이다. ‘최부자댁 육훈(六訓)’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주변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는 준엄한 명령이 드러나 있다.


흉년에는 굶주린 서민들이 헐값에 전답을 내놓을 것이니, 전답을 사들이는 행동은 곧 백성의 고혈을 빠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고 엄격히 금지한 것이다. 당대 최고의 부잣집에 시집온 며느리들이니, 그 마음이 얼마나 들떴을까. 그런 며느리들에게도 어려운 이웃들의 고충을 알게 하려고 일부러 비단옷을 금한 것이니,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소박하지만 약자를 배려하고 자신을 돌아보려는 깊은 뜻이 아로새겨진 가훈(家訓)이자 가훈(佳訓)이다.


공자는 낚시질은 하더라도 그물질은 하지 않았고,
활로 쏘아 잡는 주살질은 해도 잠든 새는 쏘지 않았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최부자댁' 가훈과 논어에서 발견한 교훈

하나같이 멋진 구절이지만, 경주 최부자댁 후손들 입장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가훈은 무엇이었을까? 감히 짐작컨대, 첫 번째 가훈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훈을 제정한 최부자도 지키기 어려운 주문이라 여겨, 가훈의 첫머리에 놓은 것은 아닐까 싶다.


역경보다는 모든 일이 뜻대로 술술 풀리는 순경을 이기기 어려운 게 인간의 본질이다. 대대로 만석꾼 집안에 공부도 남부럽지 않게 했겠다, 판서나 정승 한자리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댔을 터, 이를 누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훈을 정한 초대 최부자는 진즉에 알아챘다. 당쟁과 사화로 점철된 조선에서 큰 벼슬을 하다가는 자신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하룻밤에 역모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는 진실을.


공부는 열심히 하되, 벼슬 욕심은 버리라니! 최부자는 후손들에게 그 어렵다는 중용(中庸)의 도를 설파한 것이다. 공자와 같은 성인에게도 먹고사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물고기를 낚거나 사냥을 해서 식량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그 잔혹한 먹이 사슬의 소용돌이 안에서도, 지킬 것은 지켜냈다. 물고기를 낚아서 먹되, 그물질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씨알이 작은 고기까지 욕심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주 최부자댁 전경 - 출처_국가문화유산포털(heritage.go.kr)
오만함을 내버려둬도 아니 되고,
욕심껏 행동해도 아니 되며,
뜻을 가득 채워도 아니 된다.
즐거움이 극에 달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예기禮記〉 곡례曲禮

〈예기〉의 이 대목은 본래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에게 주어진 충고다. 최부자는 아마도 이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가훈을 만들지 않았을까. 오만과 욕심을 버리고 심지어 뜻을 가득 채우는 것조차 삼가야 한다는 대목에서 벼슬은 하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도출해낸 것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고 배운 우리 세대에게, 뜻을 세우는 일만큼은 마음껏 욕심내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부자의 가르침을 되새겨보자면, 그마저도 중용의 덕이 필요한 영역이다.


물론 중용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북극성만큼이나 멀고, 태산에 오르는 일만큼 어렵다. 그래도 최부자댁 후손들이 육훈을 주워섬기듯, 하루하루 〈예기〉나 〈논어〉의 구절을 되뇐다면 중용의 길에 조금은 가깝게 다가서지 않을까.


글. 김훈종 PD

<논어로 여는 아침>,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저자


* 위 글은 책 <논어로 여는 아침>의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책에서 더 많은 내용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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