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누구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우리는 일관성을 좋아한다. 변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사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설사 내 눈엔 그대로인 듯 익숙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같을 수 없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명언을 떠올려본다. “누구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세상이란 계속 움직이고 변하는 곳이기에 처음부터 변하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의미일 것이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젊은 누군가가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을 때 커다란 상실감을 느낀다.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그 사람은 시간이 지나 변했을까, 아니면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나의 시각이 변했을까, 혹시 둘 다 변했을까?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마치 우리가 항상 미래를 계획할 수 있고 그 계획은 반드시 실행된다고 쉽게 가정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세상은 멈추어 서 있어야 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1+1=2’와 같은 공식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우연성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무엇이든 불확실하게 변하는 요즘, 많은 사람이 자기 앞에 놓인 삶의 본질을 놓고, 두려움, 강박, 우울을 호소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일관성을 흩트린 이 불확실성이 무엇인지, 이 불확실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원하다고,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어떤 규율을 지키기만 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또 새로운 세대에게 가르친다. 마치 남이 만들어준 포장 음식을 사는 것처럼, ‘팬데믹 후 돈을 많이 버는 법’ ‘사람들을 사로잡는 말투’ ‘오십 이후에 잘사는 법’ 같은 책들이 잘 팔린다. 하지만 우연성 위에 서 있는 삶의 진실을 외면하는 그런 삶은 공허하다. 결국 삶의 진정성은 삶이 불확실성에 기인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나면 드러나기 마련이다.
불확실성이란 무엇일까?
불확실성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특징 중, 한시성을 놓칠 수 없다. 한시성이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인간의 생애에는 마치는 순간이 있고 죽음이 함께 깃든다는 아주 불편한 진실을 의미한다.
각자의 삶의 질은 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영원히 살 것처럼, 자신의 한계나 불확실성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인간은 사후세계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란 그저 삶의 본질적 요소여서 늘 삶 안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고 실제로도 그렇다. 코로나 시대 이후를 예측하는 서적들도 코로나 시대 전에 이미 우리에게 와 있던 생활 패턴의 변화가 더 빨리 실현된다며 공통된 주장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어떻게 삶이 변화하게 될지 정확한 답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 시대는 불확실성을 그대로 떠안은 시대 혹은 불확실성이라는 삶의 진실을 또렷이 목도한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다양하고 불분명하다. 어떤 훌륭한 철학자의 가르침도 결국은 그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글로벌 시대에는 여러 다른 삶의 방식들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이전에는 한국 사회는 ‘이런 사회다’라고 못 박으면 그만이었지만, 요즘에는 모든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가치관을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 속에서 나의 고유한 위치를 찾아내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언젠가 한국에 사는 친구와 긴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 김수영 평전을 읽는데, 어쩜 이렇게 천재적인 사람이 살았던 세상은 그토록 그에게 모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라고 천천히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그런 천재적인 슬픈 사람들의 삶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상, 나혜석, 김명순, 그리고 윤동주를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예술가의 슬픈 영혼들을.
하지만 이분들이 지금 태어나서 자랐다면, 그리고 이분들이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깊은 글도 감동을 주는 아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각자에게는 고유한 삶이 존재한다. 우리 삶의 시간 속에 놓인 아픔과 기쁨에 감응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갑자기 우리 앞에 다가선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선행해야 할 일은 ‘나는 어디에 서 있고, 그래서 어떤 삶을 살 때 나로서 가장 의미가 있는지’를 숙고하고 발견하는 일이다.
이 글은 책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에서 발췌했습니다.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이자 이방인으로
사회 바깥의 사람들을 위하는 박정은 수녀.
상처받은 너와 나, 우리가 잊고 있던
12가지 인간다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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