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소설 습작)
인간님들께!
다급한 마지막 부탁을 담아!
나를 찾아 산과 들을 떠도는 인간들이여 들으십시오. 나는 이제 지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를 숨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 위기를 타계할 방법으로 나는 편지를 씁니다. 부디 그대들이여.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 주기를..
나는 호랑이입니다. 과거에는 표범과 통칭하여 범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따로 칡범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 한반도에서 인간님들과 오래 함께 살아온 존재란 말이지요. 단군이 이 땅에 내려와 짝을 구할 때 곰과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경쟁하던 것도 나고, 산신령을 도와 산을 지키는 것도 나란 말씀이오다. 이 땅에서 열린 올림픽의 상징동물도 나였고, 국가대표 축구팀의 상징동물도 나 호랑이올시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얼마나 중요하게 살아왔는지는 지명의 개수를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호랑이와 관련된 명칭이 들어있는 지명이 전국에 300개가 넘는다고 하니 내가 얼마나 이 땅에서 오래 살아왔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종족은 참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 왔습니다. 그저 이 땅의 최고 포식자로서 영역을 지키고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삶이었지만, 우리를 두려워한 인간님들 무리는 우리를 계속해서 억압해 왔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인간님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숫자는 적었고 너른 평지에 살다 보니 산과 하천. 들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만날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인간들의 숫자가 끊임없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간혹 우리 땅에 인간이 침입하기도 하였지만, 그전에는 그냥 지나갈 뿐인지라 우리도 그저 놔두었습니다. 눈이 밝고 귀가 민감한 우리 종족들은 먼발치에서 접근하는 인간들을 금방 알아보고 먼저 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간들은 우리 땅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살 곳이 자꾸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잘 이해할 것입니다. 자기 땅을 조금이라도 침범당하면 인간들은 종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싸워왔습니다. 단순 말싸움에서 점차 무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었습니다. 인간들 서로 조차도 땅에 대한 욕심을 거두지 않을지언정,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들은 싸움의 대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쫓기면 쫓기는 데로, 밀리면 밀리는 데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들이었으니까요. 그나마 덩치가 큰 우리 호랑이들을 인간들이 무서워하긴 하였으나, 군대를 이룬 인간들에게는 우리들도 쉽게 범접하진 못했습니다. 그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넓은 들판을 주 서식지로 이용하던 우리 종족은 그러나, 어느 틈엔가 슬금슬금 밀려나 뒷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가 늘어난 인간들이 우리의 서식지를 점차 밀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과 먹이가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장소는 큰 강의 주변이었습니다. 강에는 물이 있고 물고기도 많이 살며, 강 주변의 풀숲에는 고라니, 너구리와 같은 먹이원이 풍부합니다. 풀숲은 숨기에도 안성맞춤이지요. 반면 산은 어려운 곳입니다. 길도 험하고, 나무가 많은 곳을 빠르게 뛰어다니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 짐승들에게도 힘이 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늘어나는 사람들은 우리도 좋아하는 하천 변에 마을을 일구었고, 무기를 만들어 우리를 몰아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우리를 몰아내려 산에까지 침범하였습니다. 우리도 살기 위해 침입하는 인간들에 대항하였지만, 우리의 거대한 몸과 강력한 이빨, 앞발도 인간들의 무기에는 대항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에게 피해를 입은 인간들은 우리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지정하고, 여러 동화를 만들어 내어 악당으로 규정하고 몰아세웠습니다. 급기야 우리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기관까지 만들어 우리는 계속해서 퇴치해야 할 상대로만 여겨졌습니다. 결국 우리 종족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고,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이제는 아마도 우리 가족을 제외한 모든 범은 이 땅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우리 가족 이외의 범을 이 땅에서 만나지 못했기에 짐작할 뿐입니다. 생존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자취를 숨겨야 했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우리의 마지막 터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습성을 바꿔 더 이상 나무에 영역표시를 하지 않게 되었고, 인간의 냄새를 맡는 능력을 더 키워 조금이라도 낌새가 느껴지면 피하면서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습니다. 인간들의 발걸음은 이제 이 땅 어디에나 닿고 있고, 첩첩산중이라 할지라도 도로와 등산로는 어디에나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혹여나 인간에게 들킬 새라 큰 도로에는 얼씬도 하지 않다 보니, 이제는 이 산에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조차도 인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심마니들이나 간혹 찾아오던 이 산에 이제는 희귀한 식물을 찾는 사람들, 귀한 동물을 찾는 사람들, 단순히 미지의 장소를 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곳곳에서는 빛이 번쩍하는 물건들이 설치되어 더 이상 숨을 장소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게 조심하여 살아왔지만, 아직도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발톱 흔적을 남기거나, 사냥감의 잔재를 남겨놓기라도 한 경우에는 인간 세상에 아직 우리 범이 남아있는 것이라는 소문이라도 퍼지는지 더욱 많은 사람이 이 산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얼마 못 가 사람들에게 발각될 것이고, 우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아니 어쩌면 우리의 살과 가죽을 탐하는 자들에게 사냥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최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켜달라고 인간님들에게 부탁을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어차피 죽게 될 운명이므로, 가족들의 허락을 얻어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재밌는 소식을 하나 접했습니다. 한 기관이 인간들을 대상으로 가장 복원되었으면 좋을 멸종위기동식물을 조사한 결과 우리 종족이 1등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웃음이 나더군요. 수백 년 동안 그토록 못 죽여 안달이 나던 우리를, 이제 다 사라지고 난 후에 복원을 해야 한다고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우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백 년 전에만 해도 우리가 뒷산에 사는 것을 못 견뎌 어떻게 해서든 제거하려 했던 우리를 지금 인간들은 어떤 능력이 생겼길래 다시 살게 만든다는 것이죠? 눈을 감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뒷산에 우리가 살아도 정녕 당신들은 괜찮나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산에 우리가 산다고 알려지면 사람들이 산에 갈 수 있을까요? 참고로 우리는 사람의 소리와 냄새를 멀리에서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산에 올라오면 금방 알아차리고 먼저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이유이지요. 그래도 혹시나 우리가 눈치를 못 채고 사람과 마주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를 마주친 과거 사람들은 보통 온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도망간다고 도망갈 수 있을까요? 동물원에서 우리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 것입니다. 벽으로 막힌 곳에서야 재미로 보고 넘어갔겠지만, 울타리가 없는 곳에서 우리를 마주친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라도 겁을 먹게 마련입니다. 가령 엄청난 용기를 내어 도망간다고 해봅시다. 도망갈 수 있을까요? 혹시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므로 물로 도망치면 도망칠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물을 싫어하는 것은 고양잇과 동물 중에 고양이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물을 아주 좋아하고, 수영도 잘 치지요. 혹시 나무에 올라 도망가면 피할 수 있을까요? 눈 나쁘고 땅에 붙어사는 멧돼지라면 가능하겠지요. 멧돼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얘기를 해보자면, 멧돼지들이 많이 늘어난 덕에 우리가 먹고살기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전국의 산에는 나무가 사라져, 산짐승들이 살 곳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오랜 전쟁과 기근으로 사람들은 산에 불을 지르고, 나무를 잘라 생계를 이어간 탓에 산은 헐벗고 우리는 숨을 곳을 찾아 더 깊은 숲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인간님들의 노력으로 산에 나무가 복원되고 많은 동물들이 늘어나게 되었지요. 덕분에 우리도 숨을 곳이 늘어났고,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우리의 먹이 생물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지요. 반면, 너무 늘어난 숲으로 인해 생물들의 양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초지를 이용하던 멧토끼나 산새들은 이젠 점차 줄어들고 있더군요. 산에 쌓인 양분이 하천으로 흘러들어 과거 모래톱이던 하천은 이제 풀밭이 되어갑니다. 하천 내에는 여러 댐과, 보가 생겨 물을 막아놓아 물은 더 오염되고 물속에 쌓인 영양분으로 녹조가 생기고 하천의 육상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환경이 변하면 생물도 변하는 법. 인간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무엇이든 적당이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나무로 올라 도망간다고 해도 우리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나무도 잘 오르거든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인간은 도망갈 곳이 없는 셈이죠. 무기가 없는 인간들이 우리를 힘으로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 우리를 뒷산에 다시 풀어놓겠다니, 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바보들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복원을 통해 우리의 개체수가 늘어난다면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순 있을지 모릅니다. 가령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는 멧돼지와 고라니의 숫자를 조절할 수 있어, 생태계 다양성을 살릴 수도 있겠지요. 먼 미국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과거 늑대가 사라진 후 늘어난 사슴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된 적이 있지요. 이때 늑대를 다시 복원하여 사슴의 숫자가 조절되자 생태계가 다시 살아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 범을 이 땅에 복원하여 그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와 늑대는 많이 다르답니다. 또한, 이 땅은 지금 우리 범들이 인간님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참 좁습니다.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과연 우리를 복원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생물다양성 회복 효과가 우리로 인해 벌어질지 모를 안전 문제를 넘어서서 까지 필요한 일 인지를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재 남아있는 우리들은 추호도 인간들에게 해코지를 할 마음은 없으니까요. 그랬다가는 인간님들의 무서운 무기가 우리를 말살하러 오겠지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선 것입니다. 혹여 우리가 먼저 나서서 무서운 인간님들을 불러들이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크게 걱정은 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뒤가 없는 이 상황에 우리는 최후의 결정을 지은 것일 뿐입니다. 부디 영민한 인간님 들이시어. 우리 최후의 호랑이들이 이 땅에서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줄 순 없을지 요청하는 바입니다. 부디 좋은 소식을 들려주길 기대하겠습니다. 이만..
한 달 후 남겨둔 편지
인간님들이여.
결국 우리는 이 땅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내 편지가 전해진 뒤로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세 명의 조사원이었으나, 어젯밤에는 총을 든 두 명의 포수가 사냥개를 데리고 산에 출입한 것을 보았습니다. 내 편지는 잘 전해진 모양이지만, 그 결과는 역시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알려질 것은 뻔했지만, 나는 최소한 일정한 시간 동안은 우리의 존재가 비밀로 부쳐지고, 이곳이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일시적이나마 우리의 살 곳이 지켜질 줄 알았습니다. 아마도 헛된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 대한 정보는 입과 입으로 전해져 결국 우리를 노리는 사냥꾼들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입니다. 이 산이 비록 넓다 하나, 사냥개들의 무리는 오래 걸리지 않아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을 알아챌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덫에 걸린 생쥐처럼 이곳에 갇힌 채 죽어갈 것이 뻔합니다. 가족들의 원망을 들으며 나는 이곳에서 탈출을 결정했습니다. 입 가볍고 우매한 인간님들이여. 왜 우리가 계속 이곳에 살게 두지 못합니까? 그대들이 아무리 자연을 보호한다고 돈을 쓰고, 입으로 부르짖을지언정 지금 남아있는 우리도 살리지 못하면서, 무슨 자연을 살리겠단 말입니까? 나는 울음을 삼키며 북쪽으로 넘어갑니다. 부디 이제는 우리를 찾지 말기를..
<호랑이 가족의 뒷이야기> 북쪽의 어딘가로
우리 범 가족은 북쪽으로 이동하여 북쪽의 철책에 도착했다. 높이가 4미터가 넘는 철책을 뛰어넘기에는 부담이 있으나, 나는 예전에 알아두었던 허술한 곳을 찾아 구멍을 뚫고 가족들과 빠져나갔다. 태백산맥을 지나 낭림산맥을 거쳐 백두산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북한을 넘어 러시아의 넓은 산림지대로 스며들었다. 올라갈수록 사람의 흔적은 줄어들었고, 우리는 안심할 수 있는 산까지 이동한 후에 이동을 멈추었다. 이동하면서 여러 번의 도로와 하천을 건너고, 노출될 뻔한 적이 많았으나 극도의 집중과 조심성으로 들키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수 백 년 간 가족이 살아왔던 터전을 버렸다는 사실이 이내 마을을 슬프게 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필히 인간님들에게 잡혀 죽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언제 발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제대로 포효하며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대장 범은 높은 산으로 올라가 수 십 년 간 봉해두었던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어흥"하고 포효하였다. 산 아래의 짐승들은 모두 몸을 낮추었고 새로운 왕의 출현을 인지하였다. 순간적으로 공포가 산 깊숙이까지 퍼져나갔다. 범 가족은 그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았다.
<뒤늦은 인간의 답장>
안녕하시오? 호랑이 선생. 나는 호랑이를 오랫동안 동경하던 사람이오. 호랑이 선생의 편지가 바로 나에게 전해졌다면 좋았겠으나 내가 이 편지를 볼 즈음엔 이미 댁 가족들은 모두 이 땅을 떠난 이후 더구려. 미안하오. 나는 이 땅에 호랑이가 남아있음을 진즉부터 예상하고 있었소.(지금부터는 범이라고 부르겠소) 범을 찾아 설악산, 지리산, 치악산, 방태산 등 이 땅의 깊은 산림을 계속 뒤졌으나 찾지 못했었소. 누군가 범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하여 찾아가면 수달의 발자국을 잘못 보고 오해한 것이라던가,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소. 이 땅에서 대형포유류는 더 이상 살기가 어려워진 것이 확실한 것 같았소. 한때 흔하게 살던 반달가슴곰도 거의 멸종하였다가, 사람들이 직접 증식하고 복원하여 이제 겨우 수 십 마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라, 범이 이 땅에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맞을 것이오. 거기다 반달가슴곰보다 덩치도 크고,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범이라면 계속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그 존재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먼저 없애버리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오. 비록 범 선생과 가족들이 사는 곳을 지켜내지 못했으나. 사람들에게 붙잡히지 않고 떠났다면 다행한 일이오. 인간을 대표하여 사과하오. 미안하오이다.
인간 이전의 모든 동 식물은 주변 자연환경에 순응하여 살아왔소. 환경이 좋아지면 개체수를 늘리고, 환경이 나빠지면 개체수를 줄여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온 것이오. 하지만, 인간들은 그렇지 않았소. 기술을 개발하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더 편한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산과 들, 바다를 파괴하여 인간의 서식지로 만들어왔소.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해 왔고, 어찌 보면 곧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 같소. 그 과정에서 배출된 여러 환경오염 물질들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식물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고, 대기 중으로 퍼져나간 온난화물질들로 인해 지구의 기후조차 바뀌어 가고 있소. 어쩌면 몇십 년 내에 남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은 상승하고, 생태계는 파괴되어 인간은 스스로를 멸종시키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주에서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온다면 인간을 필요한 존재로 볼 것인가? 내 생각에 그렇지 않을 것 같소. 지구의 생존에 인간은 어쩌면 나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일지도 모르지. 인간을 없애고 식물들이 잘 살게 만든다면 지구는 다시 이전의 깨끗한 환경으로 복귀할 수도 있을 것이오. 범 선생 가족이 살아갈 지구는 결국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인데, 우리 인간은 왜 자꾸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모르겠구려. 내가 범을 찾아왔던 것은 어쩌면 이 한반도 생태계 보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그랬지. 요즘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하긴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소. 자연은 항상 아름답고, 예쁜 것만은 아님을 알게 해주고 싶었지. 모든 동물들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거나 흡수해 살지 않소. 하지만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주는 야생생물은 많지 않다 보니,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가 점점 강압적인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오. 우리 산에 범이 남아있다면 인간들은 함부로 산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고 각자의 거리를 지키게 될 수도 있는 법이 아니겠소.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되길 바랄 뿐이오. 우리의 깨달음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오.
범 선생. 당신의 가족들이 북쪽 서식지에서는 안전하게 잘 살아가길 바라오. 그곳이라고 천국은 아니겠지마는, 한반도에 살던 때보다는 잘 살기를 바랄 뿐이오. 이곳은 우리 남은 인간들이 한번 노력해 보리다. 다시 범이 살 수 있는 땅이 될 수 있을지, 어디 한번 지켜봅시다. 그럼 이만.
호랑이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