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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공간 Oct 22. 2024

두번째 혼자 여행의 목적지는 경주입니다.

경주로 고르길 잘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두번째 혼자 여행은 경주로 정했다. 경주는 같은 해 4월, 이미 여행을 갔다왔지만 결국 또 가게 됐다. 1년에 같은 여행지를 두번이나 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혼자가는 여행은 또 다른 느낌일테니까.


혼자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건 처음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아니면 휴대폰을 멀리 놔둔게 잘못이었을까. 아침 6시 30분쯤은 일어나야하는 스케줄이었는데 전날까지 짐을 싸느라 4시간 밖에 못 잤더니 기어코 늦잠을 자버렸다.


맞춰놓은 알람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일부러 알람을 다시 끄고 자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거실에 두고 잤는데 오히려 멀어서 안 들렸나보다.


급하게 세수랑 양치만 했다. 휴대폰을 꺼내 택시 앱을 열었는데 문득 제 시간 안에 도착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앱을 닫고 코레일 앱을 열어서 다음 기차를 알아봤다. 무려 1시간 30분 후에나 탈 수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짜놓은 계획이 어그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1시간 30분 후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면 큰일이 생긴다. 어떤 일이냐하면 관광객들과 많이 마주칠 것이다. 일부러 사람들이랑 최대한 안 마주치려고 남들보다 더 빨리 출발하려고 했던 건데. 

역시 내향인의 사고방식이란...


한숨을 쉬다가 다시 택시 앱을 열었다.

 



"기사님 혹시 조금만 빨리 가주실 수 있나요?"

"예? 몇 시 차인데요?"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님께 조금만 빨리 가주실 수 있냐고 부탁드렸다. 몇시 차냐고 묻는 물음에 원래 기차 시간보다 10분 더 앞당겨서 대답했다. 그렇게 해야 속도내서 가주실 것 같았다. 


"...아니 아가씨 어쩜 그리 태연해요? 될지 안될지 모르겠네. 추천 경로에는 고속도로를 2번 타라고 돼있는데 막히면 나가지도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내가 아는 길로 갈게요~! 나중에 뭐 경로 제대로 안 갔다고 안 좋은 말 써주면 안 돼!"


기사님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주셨다. 그리고 속도위반도 두어번 하신 것 같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무려 기차 시간을 20분이나 남겨두고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차를 세워주신 기사님은 허허 웃으시며 커피 한잔 마실 시간 되겠다면서 나보다도 더 좋아하셨다.


"리뷰나 좋게 써줘요~!"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택시 앱에서 그렇게 긴 문장을 처음 써봤다. '최고' , '친절' 등 내가 쓸 수 있는 엄청난 수식어를 덧붙여서 리뷰를 써드렸다. 




여유롭게 도착해서 싱글벙글했던 것도 잠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문득 걱정이 됐다.  옆자리에 앉을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제발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내 옆자리는 아까 택시 기사님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창가 자리. 내향인은 또 이런 것도 걱정이다. 내가 앉으려고 그쪽으로 다가가면 저 통로쪽에 앉은 사람이 잘 비켜줄까? 안 비켜주고 다리만 좀 안쪽으로 집어넣으면 어떡하나. 나는 빼빼 마르지가 않아서 그렇게 하면 못 들어가는데. 


자리로 향하는 그 5초도 안 되는 순간에 여러가지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마침내 아저씨 바로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곧바로 일어났다. 나는 무거운 백팩을 짐칸에 올리고 앉을 생각이었는데 짐을 올리자마자 아저씨가 그 옆에 있던 본인 짐을 옆으로 치워서 여유공간을 더 만들어줬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지만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역은 신경주, 신경주 역입니다.


4시간 밖에 못자서 그런지 기차 안에서 신나게 머리를 흔들어대며 꿀잠을 잤다. 그리고 경주역이라는 안내방송을 듣자마자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까 옆자리 아저씨가 빠르게 일어나서 비켜줬다. 그리고 선뜻 내 짐을 짐칸에서 꺼내줬다.


아저씨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한마디 했다.


"잘가요~좋은 여행돼요."



아직 열심히 역으로 달려가는 기차 안,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고 밖에 나가 간이 의자에 앉았다. 백팩을 끌어안고 창밖을 바라봤다. 초록색 나무 사이로 군데군데 갈색으로 물든 나무와 파란 하늘이 보였다. 기차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렸다. 쨍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기분 좋은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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