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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KKI Jun 03. 2021

우리는 숫자가 아닙니다.

<쿠오바디스, 아이다>가 남긴 것

쿠오바디스 아이다 Quo Vadis, Aida? (2020)

야스밀라 즈바닉 감독


보스니아 내전이 3년간 지속되던 1995, 선생님이었던 아이다는 유엔 평화유지군에서 통역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세르비아군이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지역으로 밀려들어오자, 사람들은 안전지대를 찾아 유엔기지로 몰려든다. 하지만 유엔은 평화 유지라는 그들의 역할을 해낼 능력이 없다. 유엔 기지 앞은 기지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수라  자체인 전장에서 아이다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애쓴다. 카메라는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리는 아이다의 발자국을 뒤쫓는다. 안전지대와 그렇지 않은 곳을 오가고,  언어와  언어를 옮기며 아이다는 "함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아이다는 안전을 보장받은 상태다. 유엔 출입증과 자유롭게 기지를 오갈 수 있고, 이미 리스트에도 올라 안전하게 기지 밖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전혀 위안이 될 수 없다. 남편과 두 아들은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이다는 계속해서 자신의 가족을 살려줄 것을 요청하지만 유엔 측의 입장은 명확하다. 모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예외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유엔에게 아이다의 가족은 많은 케이스 중 하나일 뿐이다. 기지 안팎으로 그득한 사람들과 아이다의 남편과 두 아들의 차이를 유엔군은 인지할 수 없다. 그렇지만 아이다는 아니다. 아이다에게 그들은 함께 살아가야 마땅한 가족이다. 수많은 이웃들과 마주치면서도, 그들을 한 명, 한 명 구분할 수 있으면서도, 아이다는 그들의 손짓과 요청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족을 구하기 위한 아이다의 분투는 아이다의 시선을 관객과 공유하면서 그 의미를 확장한다. 가족을 찾기 위해 컨테이너 위로 올라간 아이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아이다와 정확히 같은 이유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가족을 구하고 싶은 심정은 아이다만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가족을 찾고 안전을 찾고 삶을 찾는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공간 안에서 삶이라는 예외를 염원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같다. 동시에 그들은 모두 다르다. 다시 선생님이 되고 싶은 아이다와 총은 잡아 본 적도 없는 어린 아들이 그러하듯, 저마다의 사연으로 점철된 그들은 모두 다르다. 모두가 '1'이지만, '1'은 그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목격하는 그 사람들은 숫자가 아니다. 8000명의 희생자를 낳았다는 기록은 이 참혹한 현실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8000'이라는 숫자 속에는 유일한 '1'들이 있다. 아무리 더해도 '2'가 되지 않는 유일한 '1'들.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아이다의 시선을 빌려 그 유일한 삶을 담아낸다. 모두 같은 동시에 모두 다른,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가 이 영화 안에 있다.


아이다의 노력은 실패한다. 남편과 두 아들은 안전지대 밖으로 내쫓긴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돌아온다. 정말로 삶이 예외라는 듯이 죽음은 무심하다. 평범한 일상 속 한 장면에 녹아든 무고한 죽음은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문다. 오래도록 머문다. 그러나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죽음이 머문 장면의 뒤를 이어간다. 가족과 함께했던 곳으로 아이다는 돌아온다.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한 대답과도 같다. 아이다가 도착한 곳은 처참한 현실이 머물다간 그곳이다. 아이다는 다시 선생님이 되었다. 다음 세대의 공연이 시작된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말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의 율동 속에서 우리는 번갈아가며 눈빛을 나눈다. 그 미래를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 지켜낼 수 있을까.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숫자와 마주한다. 홍콩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미얀마에서. 계속해서 유일한 삶은 몸집을 키운 숫자가 되어 날아온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족을 찾는 눈빛은 도처에 널려 있고, 삶의 의지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도 잊지 않기로 한다.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진다. 기억하기로 한다. 그 공연이 계속될 수 있도록. 어디로 가는지 묻는 말에 제대로 된 목적지를 답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추천합니다. 꼭 극장에서 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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