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이 남긴 것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 리뷰이기 때문에 늘 얼마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기에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있지만, 개인적인 견해로 <그을린 사랑>은 무언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알게 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스포일러 주의를 드립니다. 영화를 보시기 전이라면 영화 감상 후에 다시 와주세요.:)
<미나리>의 엔딩 크레딧의 “To all grandmas”라는 문장을 보고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이 떠올렸다. <그을린 사랑>의 엔딩 역시 “a nos grand-meres”라는 문장이다. 영화의 분위기도 공간도 시대도 다른 두 영화는 같은 문장으로 막을 내린다. ‘할머니’란 단어는 두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지금 이곳까지 흘러온 사랑의 증거다. 탄생과 성장의 원동력이자, 가장 단단한 고리이며, 새로운 시작을 손에 쥐여주는 가장 뜨거운 주문이다.
<그을린 사랑>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는 원제 <Incendies>를 <그을린>으로 번역해 공개된 영화는, 정식 개봉 때 뒤에 사랑을 붙여 <그을린 사랑>이라는 시적인 제목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을린 사랑>의 원작 소설은 <화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화염과 그을림의 간극, 추가된 사랑이라는 단어. 마케팅 과정의 분투가 엿보인다. 그리고 난 이 제목이 꽤 마음에 든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랑을 부정할 수 없다. 활활 타오르는 한 여성의 삶이 남긴 잿더미에는 분명히 사랑이 존재한다. 그의 삶은 화염과 같이 불타올랐고 오래도록 뜨겁다가 이내 사랑을 남긴다. 아주 많이 그을린 모양이지만 여전히 사랑임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일까. 나왈의 금지된 사랑인지, 나왈의 유언인지, 영화의 첫 장면인지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시작은 오랫동안 알지 못했거나 애써 알고 싶지 않았던 곳에 있다. 나왈이 쌍둥이에게 남긴 미션은 그 시작을 찾아가는 계기다. 평생을 평범할 줄 몰랐던 어머니를 둔 쌍둥이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잔느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고, 시몽은 형제 찾기를 거부한다. ’모르는 게 약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두 명제의 대립 속에서 영화가 선택하는 것은 결국 후자다. 남은 것이 폐허뿐일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지라도, 모든 베일을 거둬낸다.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분명히 비극이다. 하지만 나왈은 마지막 편지 속에 비극을 견딜 주문을 함께 남긴다.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너희를 사랑한다.’ 오래된 약속과 마지막 약속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낸다. 잿더미에서 결국 사랑을 발견한다.
<그을린 사랑>의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라면 아부 타렉이 5월의 니하드보다 앞서서 편지를 읽는 우연에 두고 싶다. 니하드 하르마니가 진실을 품은 채 시작할 앞으로의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담담하게 전하는 믿기 힘든 진실은 사랑한다는 말로 끝맺음한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고자 했던 나왈의 목적은 그렇게 달성된다. 애초의 목적을 잃어버린 분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그 상흔 속에서 쉬이 잊히고 잃어버리는 마음이 널려있다. 널린 마음들을 찾아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피하지도 잊지도 말자고, 그리고 사랑하자고, 영화는 약속한다. 울지도 웃지도 않고 그 약속을 지켜낸다.
*210310에 작성한 리뷰 업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