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이 남긴 것
장 마크 발레 감독
1978. 6. 24.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중에서
슬픔도 인증하는 시대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일어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애도의 마음을 표현한다. 끊임없이 올라가는 인스타그램 피드 속 애도의 글을 보고 있으면 나와 아주 먼 그 사람의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는 기분이 든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는데, 상실의 아픔을 나누는 일이 쉬워졌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애도를 기다린다. 죽은 이와 가까웠던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애도의 마음을 전하는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그것은 자주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과 그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인 것이다. 슬플 겨를도 없이 어디 하나 모나지 않은 글과 사진으로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정돈된 애도의 마음을 업로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형식이라던가, 업로드 자체가 보류될 경우 격렬한 항의와 거센 재촉에 시달린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중요한 것은 진실된 마음이라기보다 보기 좋은 차림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진짜 '진심'을 원하긴 하는 걸까?
<데몰리션>의 데이비스는 그런 점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그는 눈물을 쏟아내기는 커녕 허기를 느껴 m&m 초콜릿을 사 먹기 때문이다. 슬퍼 보이지 않는 얼굴로 아내를 떠나보낸다. 짐작하건대 그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그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나는 아내를 잃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는 거지?' 아내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는 저녁, 그는 자판기 회사에 편지를 쓴다. 자판기 고장으로 결국 손에 넣지 못한 초콜릿을 보상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편지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이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아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태도로 편지를 쓴다. 장인어른의 그루밍으로 완성된 자신의 직업적 위치, 아침 기차에서 만난 사람에게 했던 거짓말, 아내와의 만남, 결혼, 아내의 죽음, 사실 아내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던 것. 심하게 TMI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편지를 쓴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편지에서 데이비스는 고백한다. '전에는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보긴 했는데 무심하게 본거겠죠. 왜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게 은유가 됐네요.' 그는 이 뒤에 짧은 시를 짓는데, 너무 과하다며 구겨버린다. 데이비스는 왜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그에게 일어난 이 변화는 그만의 애도의 과정인 것이다. 과한 시를 쓸 만큼 가슴속에 일렁이는 마음을 두고도 그는 부러 그 마음을 무심하게 지나친다. 고장 난 냉장고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친 것처럼. 그리고 그 마음은 뜬금없이 자판기 회사 고객 서비스 팀 직원 캐런에게 전달된다. 데이비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애초에 그는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곳으로 편지를 부쳤다. 수신자를 기대하지 않았던 발신자는 예기치 않게 수신자를 만나 서로의 자리를 주고받는다. 데이비스와 캐런은 수신자와 발신자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처음으로, 비록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진실해진 사람과 그의 진실할 수 있음에 감탄하는 사람의 만남이다.
데이비스와 캐런, 캐런의 아들 크리스까지,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만난 그들은 이해받지 못해서 솔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아내의 죽음 앞에 슬퍼 보이지 않는 남편,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여자,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소년. 그동안 그들은 그 진심을 숨기는 방식으로 세상 속에 끼어들었다. 그것이 그들이 자기 자신을 지킬 최소한의 보호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데이비스는 모든 가림막에서 벗어난다. 깔끔한 슈트 대신 작업복을 입고 화려한 자신의 집을 철거한다. 타인의 이해와 상관없는 마음을 실행한다. 그런 그의 곁에서 캐런과 크리스도 그 변화에 동참한다. 그러나 그들이 최대한으로 솔직해졌을 때, 그들 앞에 펼쳐진 세상이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대게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인다. 결국 데이비스와 크리스는 상처투성이가 된다. 상처투성이가 된 아들에게 '난 네가 숨김없이 당당하길 바래'라고 말하는 캐런의 말은 크리스뿐만이 아니라 데이비스에게까지 전달된다. 깔끔한 슈트와 화려한 집,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어마어마한 숫자들 뒤에 숨어있던 데이비스가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어졌을 때, 이윽고 눈물이 흐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의심하지 않는다.
Vita Nova. 롤랑 바르트는 그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쓴 메모를 엮은 책, ⌜애도일기⌟에서 단테의 Vita Nova를 언급한다. 비타 노바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이전의 삶과 단절하고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다. 그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과거의 나를 뒤집는 것과 과거의 나를 더 강화하는 것. 이 두 가지 길은 상반되지만 공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데이비스는 솔직하지 못해서 무심했던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난다. 벗어나는 일로 순간순간 폐부를 찌르듯 떠오르는 아내와의 기억 속에서 사랑했던 마음을 상기한다. 아내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는 데이비스의 편지는 그의 오해에 불과하다. 자신과 줄리아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찌르듯이 아팠던 기억은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추억이 된다. 과거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솔직하지 못했던 삶 앞에서 진실해지기 위해, 데이비스는 고장 나 버려진 회전목마를 다시 해변가로 돌려놓는다. 거짓에서 벗어나 그가 가진 사랑을 깨닫는 것. 그것이 데이비스가 맞이한 신생이다. <데몰리션>에는 거리를 걷는 데이비스가 자주 등장한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 싶었다는 그는 인파 속에서 타인의 속도에 맞춰 걷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속 데이비스는 끝내 내달린다. 그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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