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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지 Sep 28. 2021

이름과 이름으로 만들어진 퍼즐

⌜피프티 피플⌟이 남긴 것

피프티 피플

정세랑


'인생은 독고다이'라던가 '인류애가 사라진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습관처럼 던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 입을 세게 친다. 물론 그런 농담 몇 마디로 정말 혼자 인생을 살아가게 되거나, 인류애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지만 그 말이 혹여라도 힘을 얻어 믿음이 되어버릴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험한 말 뒤에 그에 반하는 말을 꼭 한마디 되뇐다. '사랑할만한 것들은 너무나 많다.', '시간이 빠듯하니 되도록이면 사랑을 하자.', '가끔 미워하고 자주 사랑하자.' 이런 말들이 힘을 얻어 믿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자꾸만 나를 반대로 데려가는 일들이 벌어진다. 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여기저기에 실려 나에게로 도착하기도 한다. 부끄럽게도 내가 그런 일의 발생지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혼자 되뇌는 말 몇 마디로는 수습할 수 없다. 가급적 여럿이 모여야 한다. 둘러앉아 우리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해야만 한다. '저런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회복되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여럿이 모이는 것도 녹록지 않다면 감히 이 책을 처방하고 싶다.


⌜피프티 피플⌟에는 제목에 걸맞게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이름을 걸고 한 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볍게 지나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이미 운명이거나 운명이 될 뻔했던 인연이 등장하기도 한다. 작은 동네인가 싶을 때, 갑자기 최고의 안경 모델이 네덜란드에서 날아온다. 적정 온도를 유지하다가도 덜컥 차갑게 내려앉고 또 반대로 뜨거워진다. 오십여 명의 이름을 다 지나고 나면 어떤 퍼즐 하나가 완성되는데 그 퍼즐은 정확하게 잘린 조각이 아니다. 서로 겹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텅 비어있기도 한 모양이다. 두께도 일정하지 않고 반듯한 틀 안에 쏙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반듯하지 않은 모양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퍼즐이라고 부르는 마음이 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퍼즐은 단 한 조각도 버릴 수 없는 게임이다. 아무리 작은 조각도 자신의 위치 안에서 완전하다.

그리고 늘 옆에 있는 조각을 붙들고 그림을 그려낸다. 나의 굴곡이 너의 굴곡을 만나 그리는 그림이 퍼즐이다.


⌜피프티 피플⌟은 사람이라는 작은 조각에 그려진 그림을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우리'를 말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름 하나를 자세히 알게 될수록 다른 이름이 자꾸만 지어진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목차로 돌아가 보면 이름으로 지어진 단단한 건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가 아닐까.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내려앉고 누군가 죽고 또 헤어져도 우리의 이름과 이름으로 연결된 세계만은 점점 더 단단해지는 방식으로만 자라날 거라고 믿는다. 줄 세워진 이름 아래 혹은 옆에 가까운 이름들을 하나씩 새겨본다. 그 이름들과 '바로 옆자리의 퍼즐처럼 가까이 생각하고 있다'는 정세랑 작가의 문장을 릴레이 하듯 계속 옆으로 전달하고 싶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또 나에게  혼자인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퍼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곧 여기저기서 문장이 와닿을 테니 걱정 말라고 쓰인 바통을 넘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instagram: @hangangnam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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