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정신적으로 빨리 성숙했던 것 같다는 얘기를 친구와 한 적이 있다. 우린 아직도 애 같은데, 옛날에는 평범한 사람들도 10대에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았을뿐더러 몇몇 위인들은 어린 나이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철학을 낳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 이유가 평균 수명이 짧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내놨다. 죽음이 일찍 다가오기 때문에 젊은 나이부터 죽음을 생각하여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최근에 혈액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새로운 가설을 떠올렸다. 옛날 사람들이 지금보다 어린 나이에 성숙한 이유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드래곤 라자>에서 주인공이 용에게 인간은 단수가 아니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샌슨은 하나가 아니니까. 샌슨은 헬턴트의 경비대장 샌슨이고, 나의 좋은 동료 샌슨이고, 샌슨의 아버지 조이스 씨의 사랑하는 장남이에요. 칼의 신뢰받는 길앞잡이고, 그리고 그 아가씨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인 샌슨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샌슨이지요. 이런 식의 이야기도 들어보셨겠지요? 어쨌든 당신은 샌슨 하나를 살려주는 대신 그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그 가족들을 죽이면 샌슨도 죽는 셈이에요.
난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이마에 열기가 올라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요. 그 모든 것이 샌슨이에요. 당신이 헬턴트 영지를 파괴하면 헬턴트의 경비대장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날 죽인다면 후치의 동료 샌슨을 죽이는 셈이고요. 당신이 조이스 씨를 죽인다면 조이스 씨의 아들인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칼을 죽인다면 칼의 길앞잡이 샌슨이 죽지요. 그리고, 그리고 그 아가씨를 죽인다면 그 아가씨의 연인인 샌슨을 죽이는 셈이라고요."
아버지의 죽음은 나의 일부인 "아버지의 아들인 나"의 죽음이다. 나의 일부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생각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경험담과 생각, 그리고 본인이 창시한 로고테라피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사랑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처음에는 삶의 허무함을 강하게 느꼈다. 이 때문인지 책장에 올려놓고 읽지 않았던 책에 눈길이 가서 읽었다. 삶의 의미를 더 찾기 어려운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했다. 아무런 희망과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수용소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세 번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나도 이 시련을 앞으로 어떻게 살지 다짐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설령 내가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면 덜 아쉬웠을까? 아버지의 삶이 더 가치있었을까? 라고 자문했을 때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못 해 드린 것을 후회하지 않고,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잘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내가 지금 죽는다고 가정해보고, 나의 행동과 삶을 교정할 것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내 죽음이 다가와도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느끼고 싶다.